티끌 없이 해맑고 솔직해서 더 사랑스럽다.
‘조립식 가족’에서 윤주원(정채연)은 자신의 감정 앞에 가림막을 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표출한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한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오빠들의 러브레터를 전해주는 신세에 분노하다가도, 자신이 먹던 호빵의 반을 뜯어서 나눠주며 아픔에 공감하고, 늘 먼저 방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상처를 직면했을 때는 큰소리로 엉엉 울기도 한다.
정채연은 지난 27일 종영한 JTBC 드라마 ‘조립식 가족'(극본 홍시영‧연출 김승호)에서 윤주원이 되어,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을 연결해주는 소중한 조각이 된다. 본인의 모습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정채연의 윤주원은 2020년 중국 후난위성TV에서 방송한 원작 드라마 ‘이가인지명’과는 또다른 신선함을 안겨줬다.
● 황인엽, 배현성과 함께 사랑과 우정을 묘사하며
‘조립식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성도 다르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중심에 윤주원과 김산하(황인엽), 강해준(배현성)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윤정재(최원영)와 단둘이 살던 7살 꼬마 윤주원은 어느 날 갑자기 피도 안 섞인 오빠 두 명이 생긴다. 김산하는 동생의 죽음 이후, 자신을 비난하는 엄마에게 늘 타박을 받다가 그녀가 떠나고 아버지 김대욱(최무성)과 윤주원 가족과 살게 된다. 강해준은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엄마로 인해서 이들과 한 지붕 아래서 그렇게 10년을 살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이들은 혈연 관계가 아니지만, 한 테이블 위에서 음식을 먹고 아픔과 즐거움을 나누며 살아간다. 드라마는 고등학생인 세 사람의 10대의 시간에 중점을 맞춘다. “세 사람의 케미에 신경썼다”는 정채연은 “아역 친구들이 너무 잘해주지 않았나. 10년 후로 시간이 점프된 만큼, 같이 살아온 남매이자 형제의 모습을 잘 보여드려야 했다. 찍으면서 황인엽, 배현성과 실제로 친해져서 오히려 셋이 같이 안 찍으면 서러울 정도였다(웃음).”며 애정을 드러냈다.
17살, 19살이던 이들의 모습은 다시 10년의 세월을 훌쩍 지나친다. 김산하와 강해준은 각자의 사정으로 다시 본래의 가족에게 돌아간다. 그간 연락이 소홀했던 김산하는 윤주원 앞에 나타나 10년 만에 짝사랑을 고백한다.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김산하의 고백에 윤주원은 잠시간 고민하다가 연인이 된다.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사랑의 진전이 너무 빠르지 않냐’는 반응을 보였다.
“주원이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사랑인지 아닌지 잘 몰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실 서로 첫사랑이지만, 주원이는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극 중에서 산하 엄마에게 “너네 그러는 거 사랑 아니야. 착각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사랑이 맞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죠. 주원이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닌 연인에 대한 사랑은 서툴렀던 것 같아요.”
극중 김산하 역의 황인엽과 정채연의 로맨스 연기는 ‘실제로 설렌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잇따랐다. “좋아해, 이 말 하러 오는 데 10년 걸렸어”라며 고백하는 장면,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터널 안에서 처음으로 입맞추는 장면, 아픈 김산하를 병간호하는 장면 등은 특유의 풋풋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정채연은 “(두 사람의)좋은 케미를 만들려고 고민했던 신들이 많았다. 시청자들에게 설렘을 전달하고 싶었다. 감독님께서도 로맨스 신과 관련된 레퍼런스를 많이 보내주셨다. 현장에서도 리허설을 많이 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설렌 적은 없었냐는 물음에 정채연은 “사귈 수 없다! 가족이다. 오히려 스태프들이 우리가 로맨스 장면을 찍을 때, 다들 숨죽여서 지켜보고 좋아해 주셨다.”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옆에서 황인엽, 배현성과 연기 호흡을 맞추며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인엽 씨는 최대한 상대방의 호흡을 맞춰주고 주변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이에요. 덕분에 저도 많이 편안하게 촬영을 했었어요. 현성 씨는 극 중, 농구도 하고 사투리도 써야 해서 신경쓸 부분이 많았을 텐데, 정말 내색 하나 안 하고 묵묵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나며
“좋았다고. 둘이서 밥 먹다가 다섯이서 밥 먹으니까 식탁에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만 해도 이야기할 게 잔뜩이고. 빈 집에 안 들어가도 되고, 밥 먹으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이 한가득이고, 이제는 그게 당연해졌다고.” ‘조립식 가족’ 윤주원 대사 中
윤주원은 다시 본래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김산하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립식 가족’은 단순한 청춘 드라마가 아니라 비혈연 가족으로서 살아왔던, 다른 형태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인이 된 윤주원 앞에 김산하와 강해준이 다시 나타나지만, 떠나지 말라고 울고불고 했던 소녀는 10년의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모습이다.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 같아요. 화도 날 것 같고, 마냥 좋지도, 그렇다고 안 반갑지도 않은. 한편으로는 그들을 그리워했을 것도 같아요. 갑자기 나타나서 ‘같이 살 거다’라고 하니까, 주원이는 어떤 감정일까를 고민했어요. 시청자분들에게는 10년의 세월이 지난 것이지만, 실제 촬영 기간에는 크게 이동이 없었기 때문에 ‘이 감정은 뭐지?’라고 제가 느꼈던 부분을 직접 적용했던 것 같아요.”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아버지들과의 관계도 ‘조립식 가족’을 관통하는 지점이다. 친자식과 따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누구보다 걱정하고 잔소리하면서 진짜 부모가 되어준다. 정채연은 최원영과 최무성과 함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연기하며 “아빠들만 믿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존경심이 있었다. 선배님들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우리들의 기둥이 되어주셨다. 어려운 신들이 있을 때, 우리를 많이 기다려주셔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정채연은 ‘조립식 가족’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피가 안 섞여도 가족이 될 수 있구나’를 가장 많이 깨달았죠.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관계가 있구나. 예를 들어, 산하의 엄마 정희 캐릭터가 한 사랑의 방식도 틀렸다는 생각은 안 해요.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고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묘사되어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던 시간이 된 것 같아요.”
● 가수부터 배우 정채연이 지나온 청춘의 한 페이지를 넘겨보며.
원작 ‘이가인지명’을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조립식 가족’에서 윤주원 역의 정채연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원작 배우 탄쑹원이 연기한 리젠젠/윤주원은 정채연을 만나 색다르게 표현됐다. 정채연은 “처음에는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내가 했던 작품 중에서)이렇게까지 밝은 캐릭터는 처음이라서 원래 내 모습을 녹였을 때, 어떤 반응일지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촬영을 하면서 그런 두려움에 관해서는 많이 벗어난 것 같다.”고 답했다.
티 없이 해맑고 순수한 윤주원의 성격은 정채연의 실제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정채연은 “감독님께서 내가 평소에 하는 제스처나 효과음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나를 관찰할 일이 많이 없지 않나. 그런 것들을 연구해 봤다”며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 현장에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답했다.
정채연은 이번 드라마 ‘조립식 가족’을 “청춘의 한 장면 같은 드라마”로 기억할 것 같다며, 그간 지나온 청춘의 한 페이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배우를 꿈꾸던 정채연은 2013년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학교 생활을 하다가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어 다이아로 데뷔하며 가수의 길을 걸었다.
2016년 Mnet에서 방영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서 101’에 출연해 최종 순위 9위에 오르며 아이오아이(I.O.I)로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활동했다. 2021년 드라마 ‘연모’와 2022년 ‘금수저’로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편견을 깨고 호평을 받았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정채연은 한 단계씩 차근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최근 MAMA 무대를 봤어요. 빅뱅 선배님들이 무대를 하셨잖아요. 그날 너무 마음이 웅장하고 설레더라고요. 내가 가진 직업이 정말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친구가 제게 항상 말했을 때는 공감을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알겠더라고요. 나의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것에 감사해요. 무대에 올라가고 싶은 꿈은 항상 있죠. 무대만큼 즐거운 곳이 없잖아요. 늘 무대가 그립기는 하지만 저는 연기하는 현장도 하나의 무대라고 생각해요(웃음).“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