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게임 업계 노조 설립
고용 불안정 이 큰 영향
일각에선 태도 모순 비판
최근 IT 기업이 몰려있는 판교에서 잇달아 노조가 설립되고 있다. 다른 대기업과 비슷한 연봉을 받으면서 수평적인 조직문화, 다양한 복지 혜택 등을 이유로 각광 받던 IT기업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가장 발 빠르게 노조를 설립한 곳은 네이버다. 네이버는 지난 2018년 4월 창립선언문을 발표하고 IT 산업의 노조 환경에 신호탄을 쐈다. 네이버 노조는 성명을 통해 “네이버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창립 이념이었던 수평적 조직문화가 파괴됐고 수직 관료적으로 변화했다”라며 “이와 같은 분위기는 IT 부문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활발한 소통에 큰 걸림돌이 되었고, 복지도 뒷걸음질치는 수순을 밟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네이버의 노조 설립으로 여러 IT기업에서 노조를 설립하는 등 IT 산업계에 노조 물결이 흘렀다. 같은 해 10월 카카오에서도 노조를 설립했고, 본사의 성장 과정에서 직원과의 소통의 부재를 주요한 사안으로 꼽았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해 다양한 IT 기업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계보다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스타트업 등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하다 급성장을 겪어 이전과 동일한 소통을 하기엔 조직이 방대해진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IT 산업이 전반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선 지난 2013년도 기준 전체 직원 수가 1,592명이었던 네이버는 5년 뒤 노조가 설립됐을 당시 3,585명으로 2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인원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카카오도 1,539명에서 2,705명으로 인원이 늘어나면서 소통의 문제 등 갖은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이들이 노조 설립을 나서서 진행하는 것이 전혀 예상되지 않은 부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 IT 업계의 노조가 공통으로 주장하는 것은 복지개선과 보상 문제인데, 해당 계열은 좋은 복지와 급여로 명성을 떨쳐 의아하다는 것이다.
대형 IT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1인당 평균 급여액은 1억 원을 웃돌기 때문이다. 또한 판교 소재에 있는 게임산업 업계에서도 비교적 최근 노조가 설립되었는데, 이 회사들도 평균 급여액이 7,500~1억 원대로 알려졌다.
높은 급여에도 IT·산업계에서 노조를 강행하는 이유는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꼽았다. 특히 게임 업계의 대장 격인 엔씨소프트의 노조는 지난해(2023년) 노조를 출범하면서 “정규직이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한시적 정규직’처럼 느껴지는 게 NC의 현실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특정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후 완료될 경우 담당했던 직원이 대기발령 상태에 놓이는 등 사실상 단기간 업무 후 계약 종료가 일종의 관행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비슷하게 다른 게임 회사인 넥슨에서도 앞서 지난 2019년 3월 노조를 출범하면서 ‘한시적 정규직’을 지적했다. 당시 넥슨 노조가 개최한 집회에는 6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참여하면서 노조를 응원했다. 넥슨 노조 측은 특정 프로젝트 이후 해당 인원을 대기발령 상태로 두어 사실상 권고사직을 내리는 게임 산업의 악덕 관행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IT와 게임업계의 고용불안은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직장인 커뮤니티 플랫폼인 ‘블라인드’는 ‘대한민국 직장인 고용 불안 인식 변화’를 공개하면서 한국 고용 시장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조사는 2022년도 1분기와 2023년도 1분기 직장인 고용 환경 관련 검색어와 검색량을 분석한 것이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분기와 2023년도 1분기에 블라인드 내에서 고용 환경과 관련한 키워드는 전체 검색량 가운데 3.3배로 대폭 늘어났다. 특히 ‘권고사직’은 직장인에게 가장 막막한 키워드로 가장 높은 수치인 9.3배 증가했다. 이러한 검색량으로 직장인이 최근 전반적으로 고용 불안정 사회에 놓여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용 불안감이 가장 높은 곳은 IT·게임업계 종사자들로 심각한 수준이 나타났다. 두 업계는 고용 불안 검색량 급상승 업계 톱5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드러냈다.
세부적인 수치를 분석하면 IT업계 종사자들은 해당 기간 5.9배 많은 고용 불안 키워드를 검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7.3배 높은 고용 불안 키워드를 검색하여 두 업계에 만연히 퍼진 고용 불안감을 수치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한다. IT와 게임 산업에 투입되는 개발자들은 단기간 근무 이후 경력을 쌓은 뒤 몸값을 불려 잦은 이직을 행해 왔는데, 노조를 설립하여 고용안정을 운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직장인 커뮤니티 플랫폼인 블라인드에 “궁금한 게 있는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의 내용으론 “몇 년 전에 IT 업계 몸값 치솟을 때 개발자들이 우리도 전문직이다”라며 “의사와 비교하고 공무원 등 공공기관 근무자를 싸잡아 비난한 내용을 빈번히 봤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고용안정 때문에 공공직업을 선택한 사람도 많을 건데 그걸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주장하며 IT 업계는 몇 년마다 이직하면 된다”라면서 “그래 놓고 결국 노조를 만드네? 잘리기 싫어서 만든다는데 이직하면 된다고 하던 거랑 모순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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