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아 선선해진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 시나브로 모습을 바꾼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여름이 초록이었다면 가을은 주황. 나무를 물들인 단풍과 익어가는 벼가 가득한 황금빛 논밭이 늘어선 곳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을 만끽해 보고 싶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가을맞이 여행을 가는 친구, 가족들과 조금 더 특별한 추억을 쌓고 싶다면 주목. 남다른 콘셉트를 설정한 여행으로 내 안의 ‘부캐’를 꺼내 확실하게 일상을 벗어나 보자. 여행플러스 기자와 PD들이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아줌마로 변신해 전남 담양을 누볐다.
MZ 세대가 선호할 신생 스폿부터 오래전부터 담양을 대표해 온 명승지까지. 다채로운 즐길 거리 속에서 굳건해지는 아줌마들의 우정 여행 이야기를 시작한다.
1) ‘명실상부 관광 1번지’ 뻔해도 결국 이곳, 담양 대표 명승지 만끽하기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죽녹원은 명실상부 담양을 대표하는 인기 명소이다. 현재의 위상과는 달리, 죽녹원이 처음 지어질 당시 담양 군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나무를 가공해 만든 죽물로 유명하던 담양은 1970년 플라스틱이 개발되며 기세가 꺾였다. ‘대나무로 먹고살던 시대는 끝이 났다’던 지역 주민들의 곡소리에 담양군은 도전적인 시도를 감행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던 대나무를 이용해 테마파크를 조성하며, 흐려져 가던 담양의 상징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대나무가 죽으면 담양이 죽고, 대나무가 살면 담양이 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는 조선 시대부터 담양군의 지역 경제에 큰 역할을 해왔다.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 지금은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이 죽녹원을 찾는다. 같은 방향으로 일제히 흔들리는 대나무를 감상하며 죽림욕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평일에도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주말 오전, 죽녹원에 들어가려는 관광객들로 입구가 가득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는 중년 관광객의 모습이 보인다. 합세해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바깥 공기는 훈훈한데, 대나무가 가득한 죽녹원의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했다. 31만㎡(9만3840평)이라는 넓은 부지에 빼곡하게 심은 대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처럼 정교한 그림을 그려준다니,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싶어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예상과는 달리, 인물 스케치에 드는 시간은 단 15분. 특별한 방법으로 죽녹원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시도해 보기 좋을 것 같다. 대나무 이외에도 즐길 거리가 가득해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최소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죽녹원은 내부에 총 8개의 산책길을 조성했다.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 ‘사색의 길’ 추억의 샛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등 트랙마다 콘셉트를 부여해 테마파크를 지루하지 않게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운수대통 길 서쪽에 위치한 아트센터에서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장인각’이라는 상점이 등장한다. 인형과 명함 케이스 등 작은 크기의 액세서리부터 시작해 정교한 기술을 요구하는 상품까지,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물품을 판매 중이다.
사랑이 변치 않는 길에 자리 잡은 죽림 폭포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세차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시원해 죽녹원 내부에서도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폭포 앞에 위치한 정자에 앉아 폭포 소리를 들으며 심호흡하면, 번잡한 마음을 잊고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폭포 오른쪽으로 난 길에는 서원 주막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스크림, 죽순 빵을 비롯한 다양한 간식거리로 배를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평상에 앉아 도토리묵과 죽순 파전에 막걸리까지 곁들여 볼 수도 있다.
후문 쪽에 위치한 추월당 한옥 카페 역시 놓쳐서는 안 될 장소다.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하는 한옥 카페 앞으로 커다란 잔디 마당을 조성해 야외 테라스석에서 선선한 날씨를 만끽해 보는 것도 좋다. 죽녹원 내부에 위치한 카페답게 대나무 잎을 사용한 음료와 간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댓잎 가루를 섞어 만든 아이스크림과 양갱은 댓잎의 향이 강하지 않고 단맛이 은은하게 퍼져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밖에도 댓잎 라테와 댓잎 차 등 담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색있는 메뉴를 준비해 도전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에 후문으로 나오면, 거기로부터 차로 4분 거리에 관방제림이 자리 잡고 있다. 관방제림은 1648년 담양 부사 성이성이 축조한 제방이다. 관에서 주도해 쌓은 제방이라 관방제림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담양군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부사 성이성은 춘향전의 등장인물이다. 설성경 연세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후손이 성이성의 업적을 기리며 작성한 기록물과 춘향전에서 이도령의 행적이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이도령의 원형이 성이성일 것으로 추론했다. 이병노 담양 군수는 “제방을 축조한 부사 성이성의 정체가 밝혀지며, 인기 명소인 관방제림의 신비로운 매력이 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비로운 매력을 간직한 관방제림은 2㎞ 넘게 이어지는 숲길과 그 옆으로 흐르는 담양천의 조화가 아름다워 매년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다. 관방제림에는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은단풍 등 낙엽성 활엽수 160그루가 심겨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옷을 입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단풍은 관방제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꼽힌다. 잔잔한 물과 다양한 종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환상적인 경관을 배경 삼아 사진을 남기는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산책로에는 곳곳에 평상과 벤치가 놓여 있어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까놓고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손에서 핸드폰을 놓는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멀어지니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다.
2) “엄마도 이런 데 갈 수 있어” 담양의 새로운 면모 보여주는 신생 스폿 체험하기
담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승지를 방문해 명성에 걸맞은 자연경관을 만끽했다. 실패 없이 멋진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은 맞지만, 담양의 새로운 면모를 찾고 싶은 여행자들에게는 못내 아쉽다. “그래서 그거 말고 담양에서 볼 것이 또 뭐가 있는데?” 묻는 당신에게 이병노 담양 군수는 이렇게 답한다. 담양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미디어 아트 전시관인 ‘딜라이트 담양’과 소아르떼 미디어 아트 전시관을 설립해 천년의 역사를 지닌 담양을 체험형 전시라는 새로운 틀에 담아 소개한다. 전시관 내부에서 다양한 미디어 아트, 조형물과 함께 사진을 찍어볼 수 있어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독특한 사진을 남기는 새로운 사진 촬영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이밖에도 주요 관광지에 미디어 파사드, 음악분수, 미디어 아트월, 야외극장을 만들어 담양을 찾는 관광객과 군민 모두가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담양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군수는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 체험을 계속해서 선보일 예정”이라며 “관광 르네상스 시대를 도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담양의 떠오르는 문화 체험 공간을 설명할 때, 이곳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근대 산업유산인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문화예술공간 ‘담빛예술창고’이다. 담빛은 ‘담양의 빛’이라는 뜻으로, 창밖으로 관방제림의 모습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져 건물 내부에 담양의 정취가 가득하다. 담빛예술창고 내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건물 내부의 문예카페다. 차를 마시면서 문예카페에 비치된 책을 읽을 수 있어 담양의 고요한 오후를 즐기기 좋다. 건물 외부로는 넓은 잔디 마당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담양 군민을 비롯해 관광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무료 영화 상영제가 열린다. 선착순 200명에게는 팝콘을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하니 발걸음을 재촉해 보자. 담양의 밤을 밝히는 대형 스크린 앞에 다양한 연령층의 관광객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영화를 시청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좋은 숙소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것마저 여행의 일부다. 아우디가 방문한 숙소는 메타세콰이아 길옆에 위치한 ‘레이즈(Laze)’ 민박이다. 중후한 멋을 가진 철문을 열자 고요한 분위기의 숙소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메타세콰이아 나무를 등지고 자리 잡은 숙소는 하얀색의 벽과 주황색의 지붕이 도드라지는 세 동의 주택이 모여 있는 구조였다. ‘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지내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지인들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채 구조의 숙소였다. 숙소는 크게 A동과 B동으로 나뉜다. 나머지 건물 하나에는 레이즈의 운영자가 상시 거주해 고객의 요청에 발 빠르게 응대한다. 하루에 총 2팀의 고객을 맞을 수 있는 구조로 소수의 방문객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선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돋보인다.
또 하나의 철문을 열고 숙소 내부로 들어가면, 독특한 질감을 가진 벽이 눈에 들어온다. 벽은 유럽풍 미장 방식을 사용해 칠해졌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들의 외장재가 벗겨지면서 벽의 석회가 드러난 모습을 재현한 미장법이다. 어딘가 울퉁불퉁하면서도 거친 촉감의 벽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소박하면서도 차분한 담양의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숙소를 채운 상앗빛 색상의 가구들이 따뜻한 분위기를 풍긴다. 차를 내려 먹을 수 있는 주전자와 아기자기한 찻잔, 원두를 갈아놓은 커피 가루와 필터 커피 머신 등 고객의 편안한 휴식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선정했을 물품에서 운영자의 배려가 돋보였다.
숙소 건물 밖으로 작은 테라스 공간을 마련해 욕조와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그릴과 테이블을 배치했다. 고객은 이곳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담양의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목욕을 즐길 수도 있다. 욕조 위로 이국적인 모양의 파라솔을 설치해 담양으로 휴양을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테라스 공간 주위를 빙 두르는 높은 벽 덕분에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도시의 불빛에 지친 눈을 감게 한다.
자연을 닮은 향으로 유명한 ‘이솝(Aesop)’브랜드로 욕실 어메니티를 가득 채웠다. 대나무로 만든 칫솔을 비치한 점에서 숙소 측의 재치가 돋보인다. 고객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운영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숙소 내부에서 운영자를 마주치기 어렵다. 멋진 전경을 자랑하는 숙소 내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온전히 독립된 시간을 보내는 행복이 대단하다. 휴식을 돕는 운영자의 세심한 배려와 담양과 어우러지는 숙소의 아름다운 전경에 담양에서의 환상적인 하루가 저문다.
글= 박한나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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