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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날고 물속 달리고… 가을 부여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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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충남 부여를 여행하며 떠오른 표현이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성 사비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어쩐지 과거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옛 유적지와 문화유산을 보며 역사를 되짚어보는 역사 탐방의 도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 찾은 부여는 과거에 멈춰있는 곳이 아니었다. 백제의 역사가 담긴 백마강에는 국내 유일의 수륙양용버스가 헤엄치고 있고, 하늘 위에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자유 비행 열기구가 날고 있다. 기나긴 과거를 지닌 동시에 미래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부여를 생생히 전한다.

부여는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다. KTX를 타고 한 시간이면 공주역에 도착하고, 다시 30분 정도 버스를 타면 부여에 다다른다. 1박 2일은 물론이고 당일치기 근교 여행으로도 적합한 여행지다.

1. “신고하지 마세요” 물살을 가르는 국내 유일 버스


수륙양용버스/사진=류한나래 여행+ PD

발음을 하기도 힘든 ‘수륙양용버스’는 그 이름부터 생경하다. 물과 육지를 모두 다니는 버스라는 뜻으로, 부여의 수륙양용버스는 백제문화단지에서 출발해 백마강으로 입수한다. 배와 버스를 합친 독특한 모습을 예상했던 수륙양용버스는 완벽한 버스의 형태를 하고 있어 오히려 어색했다. 매일 타는 익숙한 버스가 도로를 달리다 강으로 들어가고, 창밖으로 눈높이에서 강물이 찰랑이는 경험은 비슷한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수륙양용버스/사진=류한나래 여행+ PD

그도 그럴 것이, 부여의 수륙양용버스는 국내유일의 수상버스다. 전국에 딱 두 대가 있는데, 그 두 대가 이곳 백마강을 달린다. 모두에게 낯선 모습에 운영 초반에는 수륙양용버스를 본 시민들이 버스가 강에 빠졌다며 경찰에 신고한 적이 적지 않았다고. “제발 신고하지 마셔요”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던지는 가이드에 탑승객들이 한바탕 웃는다.

백마강에 입수한 버스는 약 30분간 물살을 가르며 고란사, 낙화암, 천정대를 차례로 돈다. 백마강은 백제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나당연합군에 저항한 곳도,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곳도 백마강이다. 동승한 가이드가 각 명소에 얽힌 역사와 설화를 운행 내내 설명해 지루할 틈이 없다.


수륙양용버스/사진=류한나래 여행+ PD

안전을 위해 자리 이동은 불가하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관람하는 것은 가능하다. 2022년부터 2년간 운행하고 있는 수륙양용버스는 지금까지 24만 명 이상의 탑승객을 모으며 부여 필수 액티비티로 자리 잡았다. 1500년 전에도 흐르고 있던 백마강에서 신기술 버스를 타고 있으니 왠지 과거와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수륙양용버스는 탑승객에게 무료로 시티투어를 제공하고 있다. 수륙양용버스 도착지인 백제문화단지에서 수륙양용버스 티켓을 보여주고 시티버스에 탑승하면 된다. 칠지공원, 백제교, 궁남지, 정림사지, 부소산성 등 부여의 주요 명승지를 전부 지난다. 궁남지와 정림사지, 부소산성에서는 하차해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으니 뚜벅이 여행객에겐 최고의 선택지다.


황포돛배/사진=류한나래 여행+ PD

백마강을 달리는 건 수륙양용버스만이 아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황포돛배는 오랜 시간 백마강을 가르고 있다. 선실에서는 상쾌한 나무 향이 나 편히 쉬기에 좋고, 갑판으로 나서면 뻥 뚫린 백마강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백마강’은 머리칼을 헤집는 강바람과 퍽 잘 어울린다. 저마다의 감성에 젖은 탑승객들이 말없이 백마강을 바라본다.


낙화암/사진=류한나래 여행+ PD

구드래 나루터에서 출발한 황포돛배는 약 15분을 달려 부소산성 후문인 고란사 선착장에 정박한다. 매표소에서 요금을 내고 부소산성으로 입장하면 낙화암과 고란사가 나온다. 암벽 위에 지어진 고란사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을 가진 고란약수가 있으니 회춘이 고픈 이들은 속는 셈 치고 마셔 봐도 좋다. 너무 많이 마셨다간 전설 속 할아버지처럼 갓난아기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관람을 마치고는 다시 고란사 선착장으로 돌아와 배를 타고 돌아가거나 1시간 정도 부소산성을 걸어 나가면 된다.

수륙양용버스와 황포돛배를 200% 즐기는 팁은 운행 중 다른 버스나 배와 마주쳤을 때 힘껏 손 흔들어주는 것이다. 용기 있는 누군가 먼저 손을 흔들면 반대편에서 기다렸다는 듯 화답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원래 알던 사이처럼 밝게 인사를 하는 관광객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난다.

2. “내 어릴 적 꿈은 노란 풍선을 타고~” 꿈을 이뤄주는 부여 열기구

애니메이션 영화 ‘업(UP)’이나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부여에서는 유행가 가사처럼 누구나 한 번쯤 꿨던 ‘풍선을 타고 날아가던 예쁜 꿈’을 이룰 수 있다.


부여 열기구/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열기구를 지면과 연결해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계류식 열기구는 서울을 포함해 국내 곳곳에서 운영 중이지만, 바람을 타고 자유 비행하는 열기구는 오직 이곳 부여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인 것이다.

열기구는 하루에 딱 한 번, 바람이 가장 적은 일출 시각에 뜬다. 이른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모인 탑승객들은 안전교육과 설명을 듣는다. 열기구 탑승 준비는 열기구에 바람을 채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점점 부풀어 오르며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높이 32m, 직경 26m의 열기구에 모두가 넋을 놓고 구경하게 된다. 이후 뜨거운 불을 쏘며 이륙 준비를 완료하면 열기구가 떠오르기 전 빠르게 바스켓 안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지금이에요!” 어서 올라타라는 조종사의 소리와 함께 정신없이 탑승하고 나면 긴장할 여유도 없이 열기구가 둥실 떠오른다.


부여 열기구/사진=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매일 비행 방향과 시간이 달라지는 것은 자유 비행 열기구의 매력이다. 자유 비행 열기구는 날씨와 바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행 구간과 착륙 지점도 조금씩 달라진다. 베테랑 조종사가 비행 중에도 500도가 넘는 불을 연신 쏘아대며 방향을 조절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진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민들레 홀씨가 된 듯 자유롭다. 발밑으로 펼쳐지는 부여 시내와 백마강의 풍경을 누리다 보면 어느새 착륙 시간이 다가온다.

물론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열기구 천은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연료가 떨어져도 서서히 하강하도록 설계됐다. 단 열기구에서 육지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은 위험하다. 하늘 위로 떠다니는 열기구를 바라보다 자칫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3. 부여의 ‘얼굴’ 국립부여박물관

얼굴은 얼이 통하는 굴, 즉 영혼이 통하는 통로라는 뜻이다. 얼굴을 보면 그 영혼이 보인다. 그렇다면 부여의 얼굴은 국립부여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비백제까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의 영혼이 국립부여박물관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부여의 얼을 만나러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부여박물관/사진=류한나래 여행+ PD

국립부여박물관에는 4개의 전시실에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지만, 하이라이트는 최고의 국보인 백제금동대향로다. 백제금동대향로와의 극적인 만남을 위해서는 제2전시실의 입구부터 차근차근 관람해야 한다. 제2전시실은 향로를 포함하여 능산리 사지에서 발견된 유물을 모아뒀다. 배치마저 발견 당시의 위치를 반영했다고 하니 “이 전시실 자제가 능산리 사지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이순선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정확하다. 지금은 터만 남은 능산리 사지의 온전한 모습을 상상 속으로 그리며 안쪽으로 걸어가면 사방이 어두운 작은 방 안에 금빛 물체가 형형히 빛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다.


백제금동대향로/사진=류한나래 여행+ PD

직접 본 백제금동대향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먼저 향로 몸체의 밑 부분은 물속이다. 둥근 모양의 연꽃이 향로를 3단으로 장식하고 있고, 연꽃잎 사이사이로 악어나 날개 달린 물고기, 신선 등 신성한 존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위 향로의 뚜껑은 이상세계인 신산을 형상화했다. 굽이진 산봉우리 사이에 무려 42마리의 동물과 12인의 인물, 5인의 악사가 장식돼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각각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은 악기부터 표정까지 어찌나 정교한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백제금동대향로/사진=류한나래 여행+ PD

온화한 미소를 품고 연주하는 악사들의 얼굴에 백제의 얼이 서려 있다. 꼭대기에는 날개를 쫙 핀 봉황이 앉아 있고, 맨 밑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용이 향로를 받치고 있다. 61cm의 향로 하나에 백제의 종교와 문화, 예술, 의식까지 담겨있다니. 가히 동북아 최고의 걸작이자 최고의 국보라고 불릴 만하다.

정각이 되면 흩어져 관람하던 사람들이 로비에 모여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지잉-’ 소리를 내며 천장에 붙은 팔각형의 창문이 닫히고, 이윽고 관내가 어둠으로 덮인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국립부여박물관의 명물, 신기술 융합콘텐츠가 시작된다.


국립부여박물관 신기술융합콘텐츠/사진=류한나래 여행+ PD

박물관의 로비를 스크린 삼아 금동대향로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은 영상을 상영한다. 방금 보고 나온 향로 속 동물이 소리를 내고 움직이니 향로 속 이야기가 더욱 와 닿는다. 둥근 로비를 가득 채우는 입체적인 영상과 사운드에 관람객들은 일제히 숨을 죽이고 몰입한다. 영상이 끝나니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신기술 융합콘텐츠는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기술이 합쳐져 더욱 감동적이다. 이 시간만큼은 로비 중앙의 부식된 부여석조는 살아 있는 분홍빛 연꽃이 되고, 로비 전체는 하나의 금동대향로가 된다. 또 한번 과거와 연결되는 기분을 느껴본다.


국립부여박물관 신기술융합콘텐츠/사진=류한나래 여행+ PD

신기술 융합콘텐츠는 하루에 4번(10시, 13시, 15시, 17시) 백제금동대향로를 주제로, 3번(11시, 14시, 16시) 백제명품 및 백제 문양전을 주제로 상영한다.

이토록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부여를 기차여행 상품으로 편히 즐길 수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부여군과 함께 지난 11월 1일부터 매주 주말 ‘백제의 숨결을 찾아서 : 부여 유네스코 탐(探)행’ 기차여행 상품 운영을 시작했다. 당일과 숙박형 두 가지 일정 중 선택해 이용할 수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코레일관광개발 누리집(korailtravel.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김지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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