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복무 군의관 확보
군에서 의사 직접 양성
美 국립 군의관 의과대학
지난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한 이후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 장기화 국면으로 치달았다. 이 가운데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가칭 ‘국방 의과대학(국방의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과 일선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로 시작된 ‘의료 대란’ 뿐만 아니라 대규모 감염병 사태 등 의료 비상 상황이 생길 때마다 ‘최후의 보루’를 맡는 직업 군의관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려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국방부 관계자는 “졸업 후 10년 이상 군에 복무하는 장기 군의관을 양성하기 위한 가칭 국방의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며 “형태나 정원 등을 결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조만간 발주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당초 군 당국은 매년 군의관 지원자가 줄어들면서 군 의료 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국방부의 고충과 의사 인력 부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군 당국과 정부의 합의로 지난 2011년 의료계의 반대로 좌초된 국방의대 설립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국방의학원 설립은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매년 장기 복무 군의관 40명, 공중보건의 60명 양성을 목표로 특수 법인 형태의 국방의학원 설립을 추진했으나, 심한 의료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국방부는 국방의학원의 설립 대신 해마다 정원 외로 군의관 13명을 확보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아 군의관을 양성해 왔다.
그러나 현재 복무 중인 군의관 2,400여 명 가운데 10년 복무 장기 군의관은 7.7%로, 최근 10년간 한 자릿수를 지속해서 기록하며 군의관 양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군의관 장기 지원자의 경우 2014년 4명, 2015년 2명, 2016년 3명, 2017년 2명, 2018년 1명, 2019년 3명, 2020년 0명, 2021·2022년 각 1명, 2023년 0명으로 집계됐다.
장기 군의관의 부족이 군 의료진의 숙련도 저하로 이어지면서 오진과 의료 사고가 빈발해 군 병원에 대한 장병의 불신이 높은 상태다. 이 같은 상황 개선을 위해 군 당국은 장기 복무 지원자 확대를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기존에 논의되던 복무 기간 유연화, 임금 인상 등의 방안은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안정적 수급을 위해 의대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실제로 이미 국방의학원 수준의 연방 사관학교를 설립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립 군의관 의과대학은 미국 군의관을 양성하는 대표교육기관으로 특정 군의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닌 모든 군에 공급할 군의관, 간호장교 및 보건 과학 전문가 등을 양성한다.
우리나라가 지난 2011년 국방의학원 설립을 논의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지난 1972년 이미 이 기구를 창설했으며, 미국 국방성 산하뿐만 아닌 미 해군과 인원을 공유하는 미 해병대, 미 해안경비대, 연방 공공보건 서비스 부대까지 총망라하는 핵심 군 의료시설로 꼽힌다.
해당 학교의 입학생은 군의 특수성에 따라서 의사와 군인이라는 이중 신분을 가지며, 소위로 임관한 다음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사관생도와 같은 학부 과정의 사관 학교가 아니며 입학과 동시에 소위가 되기 때문에 군 경력자가 아닌 민간인들의 지원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학교의 의무 복무기간은 7년으로, 이 중 전문의 수련 기간은 제외된다. 실제로 미국 내 국립 군의관 의과대학은 상당한 권위를 자랑하며 대통령 주치의를 단골로 배출해 내는 등 전문 의료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 역시 방위성 산하 군의관 양성 국립교육 기관인 방위의과 대학교를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군 병원의 권위가 낮은 점이 문제로 꼽힌다.
군 관계자들은 군의관 양성 학교 설립에 대해 “군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군의관을 육성해 군 의료체계를 민간 의료체계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인프라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하며 “장기 복무 군의관을 육성하기 시작하면 군 의료체계 발전 모멘텀뿐 아니라 격오지 의료 현장에서 대민 의료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는 ‘민군 하이브리드’ 군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국방의학원 설립에 대한 논의가 뒤떨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국방의학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어 국방의학원 설립을 통해 장기 군의관이 늘어나면 군 병원에 대한 신뢰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국방부는 국방의학원 설립이 지난 2011년 추진됐다가 무산된 경험을 토대로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측은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의료계 입장도 반영할 수 있는 연구 기관에서 설계 용역을 진행하려 한다”고 밝히며 “현재는 검토 초기 단계여서 유관 부처와의 논의는 물론이고 국회의 협조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 2월 성일종 국민의 힘 의원이 발의한 ‘국군 의무사관학교 설립법’은 오는 5월 29일 21대 국회가 종료됨과 함께 폐기될 예정으로, 국회 차원에서의 국방의학원 설립 추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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