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자문 제도 불신
보험금 부지급으로 이어져
실비보험 악용 예방 수단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문제가 제기돼오던 의료자문 동의서에 대한 소비자와 보험사 사이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보험 회사들이 주치의 진단서 등 가입자의 제출 서류를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지정한 병원에서 ‘의료자문’을 받으라고 강요한 사례가 알려지며 의료자문동의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소비자의 관심이 주목된다. 이어 지속해서 이어지는 ‘의료자문’ 절차의 오남용 문제 역시 함께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자문 제도란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 또는 손해사정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 전문의 또는 주치의 소견 발급이 불가한 경우에 주치의 이외의 전문의에게 의학적 소견을 구하고 그를 보험 지급 심사 자료로 활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의료자문제도는 보험약관에서 규정한 보험금 지급 절차의 의무 사항이며 이를 위해 보험 약정 가입 시 의료자문 동의서에 소비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 제도에 대해 소비자와 보험사의 입장 차이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의 경우 보험사들이 의료자문을 방패 삼아 보험금 지급을 부당하게 거절하거나 삭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보험사들은 보험사기를 방지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를 향한 소비자의 불신은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의료자문이 필요한 경우는 환자와 보험사 간 이견이 생겼을 때다. 보험사는 이때 해당 환자의 담당 주치의가 아닌 의료법 제3조 상의 종합병원 소속의 전문의(제3의 의사)를 통해 진단과 치료 과정에 대한 의견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자문 제도 자체가 보험수익자(환자)가 보험회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구제 수단으로서 선택적으로 이용하도록 마련된 절차다. 업계에서는 이를 ‘제3의료기관 의료 판정’이라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일반적인 의료자문과 달리 환자가 원할 때, 즉 선택사항으로 환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진행된다.
그러나 일부 보험사가 ‘의료자문’과 ‘제3의료기관 의료 판정’의 차이를 고지하지 않거나 한꺼번에 동의를 받음으로써 ‘제3의료기관 의료 판정’의 동의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자문 계약을 체결한 특정 의료기관의 전문의를 통해 ‘의료자문’을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의료자문의 오남용이 일어나며, 환자 주치의의 진단과 치료 적정성에 이견을 만들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수 있는 것이다.
의료자문 제도에 대한 소비자와 보험사 사이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보험사들이 의료자문을 방패 삼아 보험금 지급을 부당하게 거절하거나 삭감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험금을 최대한 지급한 후 지급 근거가 확실히 부족한 경우 등의 상황이 돼야 의료자문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보험회사의 경우 가입자에게 서면으로 요청하는 의료자문 동의서에서 일반적인 의료자문과 제3 의료기관 의료 판정에서 의미하는 의료자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의료자문으로 동의를 받거나 동의 여부를 한꺼번에 체크하게 하는 등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는 다양한 수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이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을 경우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식으로 사실상 보험사가 주치의 의학적 소견은 배제하고 환자들에게 선택사항인 제3기관 의료 판정에 동의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논란은 계속된다.
당초 의료자문의 경우 금융감독원과 보험협회가 만든 ‘의료자문 표준 내부통제 기준안’을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보험회사는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지연하여서는 아니 되며 보험계약자 등이 제출한 의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한 기준안인데, 일부 보험사가 이에 위배되는 선택적 의료자문인 제3의료기관 의료 판정에 대한 동의 여부 및 그 결과가 보험금 지급의 거절 및 지연 사유로 인정된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해당 제도로 인해 일부 의료기관과 브로커가 실비보험을 악용하는 실손보험금 빼먹기를 방지할 수 있다. 일례로 백내장 수술에서 시력 교정 효과가 있는 다초점렌즈를 삽입하거나, 치료를 빙자한 과도한 도수치료를 하는 등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의료자문 제도는 필수적이나 이 역시 소비자의 악용과 보험사의 악용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1월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실제 보험사기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삼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하는 행위뿐 아니라 보험사기를 알선, 유인, 권유, 광고하는 행위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실손보험금 빼먹기에 대해 필수 의료체계를 악화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실손보험 제도 개편’은 의료 개혁특별위원회가 논의하는 의료 개혁의 핵심 안건으로도 상정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 사기에 가담하는 의료진은 일부다. 이들의 경우 무겁게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험 사기 문제는 처벌 규정에 따라 다스려야 하는 것이지 모든 진료 및 치료 건을 일단 사기로 의심한 뒤 의료자문 제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험업계 전문가는 이런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는 보험 서류 가입 당시 모든 세부 약관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보험사 역시 의료자문 표준 내부통제 기준안에 따라 약관 설명 및 용어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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