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 파동’ 이겨낸 삼양
시총 업계 1위 농심 제쳐
김기춘 전 비서실장 논란
국내 라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기업이 있다. 바로 농심과 삼양라운드스퀘어(前 삼양식품·이하 삼양)가 그 주인공이다. 두 기업은 각각 라면 1위라는 원조와 타이틀을 가지고 30여 년 동안 경쟁을 벌여왔다. 당초 삼양은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인 선발주자로 알려졌으나 농심의 등장과 터진 ‘우지 파동’으로 업계 1위를 후발주자인 농심에 내줬다. 그랬던 삼양이 달라졌다.
삼양이 농심을 제치고 라면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이는 삼양이 기록한 1분기 호실적과 함께 주가가 연일 상승세를 타면서 업계 1위로 오래 자리 잡았던 농심을 제친 것으로 판단된다. 식품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농심과 삼양이 ‘라면 대장주’ 자리를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됐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삼양식품의 주가는 전일 대비 10.02% 오른 58만 2,000원에 거래 중이다. 이어 지난달 10일 삼양의 시가총액이 1995년 이후 처음으로 경쟁사를 뛰어넘은 2조 4,519억 원에 이르며 업계의 관심이 주목된다. 삼양식품의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삼양식품은 논란을 딛고 어떻게 농심을 이길 수 있었을까?
당초 삼양식품을 업계 1위에서 끌어내린 것은 지난 1989년 일어난 ‘우지 파동’ 사태다. 이는 대한민국 라면, 쇼트닝, 마가린, 식용유 등 모든 동물성 유지식품 시장 역사상 최대의 흑역사로, 검찰이 삼양식품 등 일부 회사가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우지를 써서 식품위생법을 위반하였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검찰의 의혹 제기 이후 보건사회부는 우지가 무해하며 식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소비자의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수사 대상이 된 삼양식품은 업계 1위에서 순식간에 존폐의 기로에 서며 경영난을 겪어야 했다.
당시 검찰의 주장은 이들이 라면을 튀기거나 쇼트닝, 마가린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정제 쇠기름의 원료로 미국에서 수입해 온 2등급 및 3등급의 유지를 두고 ‘비식용 유지를 정제하여 식용유로 사용한 것이 안전한가?’라는 의혹이었다.
삼양 측은 검찰의 주장에 즉시 반박하며 “우지를 써서 라면으로 제조해 온 건 20년 전부터다.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분을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우지를 수입하고 정제하여 식용 우지로 사용할 것을 정부에서 권장하고 추천했기에 사용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지의 수입 과정이나 정제하여 식용 유지로 쓰였다는 점에 있어서 식품위생법상 제반 검사에서 적격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고 반박하며 “1989년 우지 수입 단가가 팜유 수입가보다 톤당 100달러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우지를 썼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우지나 팜유를 비롯한 식물성 유지들은 원유 상태에선 비식용”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생긴 소비자의 불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 시민단체들이 성명을 통해 삼양의 사과와 제품의 전량 수거, 유통업자들의 진열 판매 중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보건사회부의 항구적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삼양식품의 매출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보건사회부가 라면 341건을 수거하여 검사를 진행했으나 식품공전 규격에 어긋나는 제품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우지 파동으로 인해 라면 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특히 당시 라면 산업을 이끌어가던 삼양식품은 가장 큰 치명타를 입었으며, 파산 직전까지 간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업계에서 삼양식품이 지켜오던 위상은 떨어졌으며, 사실상 퇴출당하다시피 했다. 이후 삼양식품은 라면을 튀기는데 동물성 기름이 아닌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방안으로 노선을 틀었다. 우지 파동 사태 이후에도 삼양식품은 8년이라 걸린 재판에서 이겨 결백을 증명했으나 이미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그러나 삼양식품이 업계에서 밀려난 데에는 우지 파동만 이유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당초 농심이 80년대에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하며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안성탕면 등 4개의 스테디셀러를 개발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했기 때문에 삼양식품이 경쟁력에서 밀려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우지 파동 때문에 쓰인 오명을 삼양식품은 무엇으로 극복했을까?
바로 불닭볶음면이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16년 당시 매출액 3,593억 원을 기록했으나, 6년이 지난 2022년 9,000억 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증명했다. 이는 삼양식품이 불닭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창립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계속해서 기록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들어서 삼양식품의 주가는 145%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지난해 말 26만 6,000수준이던 주가가 현재 58만 원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만 주가가 79% 급등하며 전체 코스피 상승률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업계 1위였던 농심과의 시가총액 격차는 1조 원 넘게 벌어졌다. 한때 라면 업계 시장점유율 60%를 기록했던 삼양식품이 불닭의 해외 인기에 힘입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주목된다.
한편, 삼양식품의 몰락을 가져올 뻔했던 ‘우지 파동’ 사태를 주도한 인물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김기춘 전 실장이 우지 파동 사태의 최대 수혜자인 농심의 비상임 법률고문으로 위촉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제기된다. 김기춘 전 실장은 당시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며 삼양식품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지난 2008년 농심이 김기춘 전 실장에게 수백만 원의 급여를 주며 비상임 법률고문으로 위촉해 그는 2013년까지 고문을 맡았다.
이를 두고 끊임없는 논란이 제기되자 농심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을 비상임 법률고문으로 영입한 것은 ‘우지 파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당시에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었다. 전 실장을 영입한 건 농심이 바둑대회를 개최한 인연 때문”이라고 전하며 소위 말해 ‘보은 인사’가 아니라고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보은 인사가 아니라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귀가 딱딱 맞냐?”, “이완용보다 더하다”, “우지 파동으로 인해 농심은 한 방에 라면 점유율 85%를 달성하고, 시장 점유율이 농심과 비슷하던 삼양은 8% 미만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역시 길게 보면 세상은 공평하다”, “죄 지으면 벌 받는다”와 같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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