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맥스어워드:영화] ‘중꺾마’ 정신부터 신인의 눈부신 약진
2023년에도 대중을 울고 웃게 만든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는 계속됐다.
맥스무비가 2023년을 장식한 결정적인 작품 5편과 그 작품에서 활약한 인물 5명을 통해 지난 1년을 돌아보고자 한다. ‘맥스어워드’로 명명한 이번 결산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수상자 선정에서 한발 벗어나, 각자의 위치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상징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영화’와 ‘시리즈(OTT · TV 드라마) 부문으로 나눠 살폈다.
올해 영화계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키운 해였다.
코로나 팬데믹19 이후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극장은 좀처럼 회복이 더딘 모습을 보였지만 그 가운데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서울의 봄’과 ‘범죄도시3’까지 두 편의 1000만 영화가 탄생했다. 주류 장르에 밀렸던 애니메이션과 코미디가 예상 밖의 큰 성과를 냈고, 특히 신인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인 해이기도 하다.
# 시대의 결심상 🏆 ‘서울의 봄’ 황정민
배우 황정민이 전두광 역을 맡지 않았다면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지금 같은 열풍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서울의 봄’의 흥행에는 서울의 봄을 앗아간 반란 세력에 대한 분노가 실제했던 역사로서 현실과 공명하며 기폭제로 작용한 영향이 컸다. 그 분노의 중심에 반란의 주동자 전두광이 있었다. 반란을 막으려는 이태신의 고군분투가 돋보일 수 있었던 것도 그 반대편에서 굶주린 늑대처럼 권력을 탐한 전두광을 살벌한 연기로 표현한 황정민의 공이 컸다.
황정민의 활약 덕분에 영화는 무려 1100만명의 선택을 이끌어냈고, 작품의 여파가 정치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의 결심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열기다. ‘시대의 결심상’에 선정한 이유다.
김성수 감독은 12·12군사반란을 소재로 만든 ‘서울의 봄’의 연출을 맡기로 결정한 뒤 연극 ‘리처드 3세’에서 사악한 왕을 연기한 황정민을 가장 먼저 만나 캐스팅을 이뤘다.
전두광은 전직 대통령이었던 실존 인물을 모델 삼은 캐릭터로,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일 터였다.
황정민은 고심 끝에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였고, 감독을 만나서 ‘악인의 끝판왕을 보여주겠다’며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전두광을 표현하기 위해 매 촬영마다 4시간씩 민머리 분장을 하고, 분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군모를 쓰는 장면에서도 완벽한 연기를 위해 민머리를 고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로 관객의 공분을 사고 있는 희대의 악마 전두광이 탄생했고, ‘서울의 봄’은 개봉 33일차인 24일 1000만 영화에 등극했다.
#중꺾마상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송태섭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불 지핀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은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이어받았다. 주인공 송태섭은 올해 스크린에서 중꺾마 정신의 불을 지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고교 농구 청춘의 도전을 그린 작품으로, 원작 만화의 북산고 마지막 경기인 산왕(공고)전을 스크린에 옮겼다. 우승 유력 후보 산왕을 상대로 수세에 몰려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승리를 거두는 북산고의 중꺾마 정신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는 원작의 큰틀을 따르되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숨은 사연을 들려준다. 아픈 가족사와 작은 키의 핸디캡을 딛고 북산고의 넘버원 가드로 성장하는 송태섭의 이야기가 원작을 모르는 이들은 물론 원작 팬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송태섭뿐 아니라 북산고 농구부 한명한명이 중꺾마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바스켓 풋내기에서 리바운드 볼을 제압하며 팀의 비밀병기로 성장하는 강백호, 무명의 팀을 전국 무대로 이끄는 주장 채치수, 천부적 재능을 가졌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에이스 서태웅, 무엇보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는 명대사를 남긴 정대만은 중꺾마 그 자체다.
농구 바보들의 뜨거운 도전을 그린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470만명이 응답했고, 이에 힘입어 이후에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550만명),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30만명), ‘엘리멘탈'(720만명)까지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흥행 열풍은 이어졌다.
# 무산소 케미상 🏆 ‘밀수’ 해녀즈
남성 배우들의 주무대였던 여름시장에서 해녀들이 해냈다. 김혜수 염정아 두 여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약 2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밀수'(감독 류승완)가 여름시장의 최종 승자가 됐다.
‘밀수’는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고 밀수판에 뛰어든 해녀들의 이야기로 514만 관객을 모았다. 해녀와 밀수를 범죄 장르로 풀어낸 기발한 이야기와 개성만점 캐릭터의 앙상블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그 가운데 김혜수 염정아 김재화 박준면 주보비가 뭉친 해녀들의 활약이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산소통 없이도 바다를 누비는 해녀들의 절묘한 호흡은 그야말로 ‘무산소 케미스트리’를 자랑했다. 김혜수는 ‘인생 한 방’을 노리는 조춘자 역으로, 염정아는 생계를 위해 조춘자의 계획에 동조하는 엄진숙으로 해녀들을 이끌었다. 해녀는 아니지만 해녀들을 돕는 고옥분 역의 고민시도 두 베테랑 배우 사이에서 천연덕스럽게 캐릭터를 소화하며 매력을 발산했다.
‘밀수’의 백미는 해녀들의 호흡이 돋보인 후반부 수중액션 장면. 이장춘(김종수)과 장도리(박정민) 일당을 상대로, 산소통 없이 재빠르게 물속을 헤엄치며 응징의 주먹을 날리는 해녀들의 수중액션은 다른 액션영화에서 볼 수 없는 그림과 쾌감을 선사했다.
# 뛰어난 보석상 🏆 ‘너와 나’ 조현철, ‘잠’ 유재선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와 유재선 감독의 ‘잠’은 올해 한국영화계의 발견이자 성취로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한국영화를 이끌어 나갈 뛰어난 실력자이자 ‘보석 같은 연출자’의 자리도 예약했다.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싶은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등 배우로 더 친숙한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조현철 감독은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소녀들의 순수한 감정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로 완성했다. 이에 3만명의 관객이 지지를 보냈다. 앞서 ‘척추측만’ ‘뎀프시롤:참회록’ 등 단편으로 쌓은 실력을 장편 데뷔작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독립영화에 조현철 감독과 ‘너와 나가 있다면 상엉엽화에는 유재선 감독과 ‘잠’이 있다.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제자로도 관심을 모았는데, 첫 작품인 ‘잠’으로 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주목받았다.
‘잠’은 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단란한 일상을 잃게 되는 신혼부부의 이야기. 일상적 소재를 스릴러로 풀어낸 개봉 이후 손익분기점의 2배에 가까운 147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 외에도 평단의 극찬을 받은 ‘괴인’의 이정홍 감독, ‘잠’과 함께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받은 ‘화란’의 김창훈 감독, 44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수상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두 번째 작품으로 쌍천만 기록을 얻은 ‘범죄도시3’의 이상용 감독까지 올해는 신인들의 활약이 유난히 빛났다.
# 반전의 웃음상 🏆 ’30일’ 강하늘
‘서울의 봄’과 ‘범죄도시3’의 1000만 돌파 만큼으나 올해 영화계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작품은 바로 ’30일'(감독 남대중)이다. 웃을 일 없던 극장가에 박장대소를 선사하며 반전의 흥행을 이뤘다.
’30일’은 올해 흥행에 성공한 ‘서울의 봄’ ‘범죄도시3’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30일’ ‘잠’ 6편의 한국영화 가운데 유일한 코미디 영화다.
’30일’은 이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동반 기억상실증에 걸린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강하늘과 정소민이 ‘스물’ 이후 8년만에 다시 만난 영화로도 관심을 모았다.
6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로, 추석 연휴를 노리고 개봉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 ‘거미집’ 대작들에 가려 상영 초반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예상 밖에 강력한 코미디 요소에 입소문을 얻어 216만명 동원에 성공했다. 장기 불황의 그늘에서 웃음을 주는 영화가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며 흥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망가짐을 불사하는 ‘지질한’ 연기로 웃음을 선사한 강하늘이 영화의 흥행 공신으로 꼽힌다. 강하늘은 감독에게 “이렇게까지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만큼 몸을 사리지 않고 망가지는 코미디 연기를 펼쳤다.
’30일’은 아무도 흥행을 기대하지 않은 영화였지만 입소문의 힘과 역주행 끝에 반전의 드라마를 썼다. “재미가 있으면 본다”는 명제를 증명해낸 ‘슬리퍼 히트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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