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인 것이 왜 약점이야.” 자신의 비밀을 들키는 바람에 약점이 잡혔다고 생각하는 흥수에게, 재희가 한 말이다.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거문고 명수 백아와 나무꾼 종자기의 우정에서 유래했다. 백아는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인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를 부쉈다고 한다.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살아갈 만하다’고 말하지 않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제작 쇼박스)은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단편소설 ‘재희’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함께 동거하며 각자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스무살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서른셋의 나이가 될 때까지 서로의 비밀을 나누고 스토킹 사건을 계기로 동거까지 하게 되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우정을 나누는 남녀의 이야기이다.
‘네가 너인 게 약점’이 되는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두 사람은 ‘하자’ 있는 인물이다. 여자는 “헤프다”는 수군거림을 듣지만 사실은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인 로맨티스트이고, 남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성적 정체성을 가졌다.
여자는 그런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고, 남자는 그런 세상과 벽을 친다. 어느 쪽도 상처를 입는 것은 마찬가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안식처, 구원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서로의 존재로 인해서 둘은 그들에게 가혹한 세상을 견디며 성장해간다. 재희와 흥수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대도시의 사랑법’은 두 사람이 사랑과 인생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담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이 둘의 우정을 통해 자신과 다름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회의 일그러면 단면을 비춘다. 영화 속 여성의 신체를 품평하고,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은 영화 밖 세상에서 고스란히 일어나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이를 심각하지 않게 오히려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유쾌하게 풀어낸다. 영화에는 ‘뼈 때리는’ 웃음이 가득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김고은과 노상현의 앙상블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자신의 장점 단점 강점 약점 모두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재희와 흥수를 통해, 두 사람은 사랑보다 더 설레고 더 달콤한 우정을 그려낸다.
특히 김고은의 재희는 시쳇말로 ‘끝내준다’. ‘백마 탄 왕자’처럼 짠 나타나 위기의 흥수를 구해주는가 하면, 자신을 뒤에서 헐뜯는 무리들을 향해 파격적인 언행을 보이면서 찍소리도 못하게 만든다. 마치 ‘이 구역의 미친 X은 나야’라며 경고하듯,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삶을 온몸으로 저항한다.
그러면서도 그로 인해 고립되고 도태될까 두려워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해내는 김고은은 인물이 가진 아픔에 공감하게 만들며 감독의 말처럼 ‘왜 재희가 김고은이어야 했는지’를 증명한다.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굿을 하는 젊은 무속인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뜨린 ‘파묘’보다 더 근사하고 매력적인 김고은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감독 : 이언희 / 원작 :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재희’ / 출연 : 김고은, 노상현 / 제작 : 쇼박스, 고래와유기농 / 장르 : 드라마 / 개봉 : 10월1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18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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