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황식물로 사랑받던 칡이 이제는 생태계를 위협하는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특히 칡덩굴이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면서 숲, 도로, 가정집까지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과거에는 가난한 시절 배고픔을 달래준 칡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성장이 삼림을 황폐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칡덩굴이 생태계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이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숲을 삼키는 칡덩굴의 위협

칡은 하루에 줄기 길이가 30~40cm씩 자랄 정도로 빠른 생장력을 자랑한다. 이 덩굴은 높은 곳으로 타고 올라가며 큰 나무도 감아버린다. 나무는 칡에 얽히면 빛을 받지 못해 성장을 멈추고, 결국 고사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삼림 생태계는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성산일출봉에까지 칡덩굴이 침투하여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있다.
특히 칡은 주변 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빼앗으며, 자신의 생장을 위해 모든 자원을 독점한다. 여름철에는 잎이 무성하게 자라 다른 식물의 광합성을 방해하고, 겨울이 되면 칡의 뿌리가 땅속 깊이 자리 잡아 제거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런 공격적인 생장 특성으로 인해 칡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칡 제거 작업, 끝없는 도전

칡덩굴 제거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제거 작업은 주로 경사가 심한 비탈진 산에서 이뤄지며, 이 과정은 작업자들에게 큰 체력적 부담을 준다. 칡뿌리는 땅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를 삽과 곡괭이로 캐내는 과정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작업자들은 칡뿌리를 캐낸 뒤 무게가 150kg에 달하는 칡을 토막 내어 지게에 지고 산을 내려온다. 하산 중에는 미끄러운 낙엽과 나무뿌리 때문에 넘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힘들게 캐낸 칡은 가공 공장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조청 등으로 재탄생한다. 칡 제거 작업은 매년 봄, 여름, 가을철에 걸쳐 진행되며, 특히 봄철 나무가 새싹을 틔우기 전에 이뤄지는 작업이 가장 효과적이다.
칡과의 전쟁을 선포한 제주도


제주도는 칡덩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계획을 세웠다. 2024년 기준, 제주에서 칡덩굴 제거 면적은 약 994ha에 달한다. 이는 서울 여의도의 3배가 넘는 면적이다.
지난 2월 제주도는 칡덩굴의 급속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1월부터 연중 제거 작업을 시행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고 밝혔다. 32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고, 친환경 약제를 활용한 방제 작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칡뿌리 수매 사업도 시행 중이다. ㎏당 약 2000원을 지급하며,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또한, ‘숲 가꾸기 패트롤’과 같은 산림 일자리 사업을 통해 작업 인력을 확보하고, 도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은 제주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되고 있다.
칡뿌리, 그 속에 숨겨진 가치

칡덩굴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칡뿌리 자체는 여전히 약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예로부터 칡뿌리는 풍열을 발산하고, 근육을 풀어주며, 해독 작용을 돕는 약재로 사용됐다.
특히 칡은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 애주가들에게 유용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칡뿌리에 포함된 성분은 간 기능을 개선하고, 숙취의 원인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칡에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대두보다 10배, 석류보다 600배 많은 에스트로겐 성분을 지닌 칡은 골다공증 예방, 콜레스테롤 개선, 혈압 조절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런 효능에도 불구하고 칡덩굴의 무분별한 확산은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어, 관리가 시급하다.
두 얼굴을 가진 칡

칡은 사람에게 유용한 자원이지만, 자연 생태계에서는 파괴적인 존재로 변화했다. 이중적인 특성을 가진 칡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지역 곳곳에서 이어지는 제거 작업은 칡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다. 동시에 칡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병행해 그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칡과의 공존은 어렵지만, 체계적인 관리와 인간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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