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빗장을 걸어 잠갔던 홍콩이 다시 문을 열었다. 동시에 세계 관광 시장의 이목이 쏠렸다. 기대에 부응하려는 홍콩의 움직임도 바쁘다. 그간 아시아 최대 금융 중심지이자 화려한 밤 문화로 관광객을 끌어모았던 홍콩은 이제 예술 도시로 재탄생하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간척지에 예술 지구를 설립해 한 곳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함은 물론 매해 3월, 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을 개최하며 전 세계 미술 애호가를 홍콩으로 이끌고 있다.
홍콩이 자랑하는 예술의 매력이 궁금했다. 이에 지난달, 홍콩에서 직접 그 매력을 느끼고 왔다. 낮에는 빽빽한 고층 빌딩이 가득한 도심으로, 밤에는 꺼지지 않는 조명이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으로만 홍콩을 기억했다면 주목하자. 일상 어디에서나 예술과 공존할 수 있는 도시로 홍콩이 돌아왔다.
홍콩의 예술을 느끼기 위해 한 지역만 방문할 수 있다면, 들러야 할 곳은 단연 서구룡 문화지구다. 서구룡 문화지구는 홍콩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중심지다. 홍콩 정부는 누구나 일상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구룡 문화지구를 계획했다. 이에 본래 바다였던 곳을 흙으로 메웠고 해당 지역엔 미술관, 박물관을 비롯한 다채로운 시설을 세웠다. 지금도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서구룡 문화지구는 2026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홍콩을 넘어 세계적인 예술 중심지로 이름 알릴 예정이다.
서구룡 문화지구에서 들른 명소는 홍콩 고궁박물관이다. 홍콩 고궁박물관은 서구룡 문화지구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역사박물관이다. 2022년 7월 개관한 박물관은 총 9개의 갤러리로 구성돼 있다. 그림, 보석은 물론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까지 다양한 물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홍콩 고궁박물관의 소장품 1000여 점은 자금성이 대여한 것이다. 그중 166점은 중국에서 국보로 분류하는 1급 문화유산이다. 베이징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명, 청조시대 보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개관 전부터 관심을 끌 만하다.
고궁박물관이 중국 전통 건축 양식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서구룡 문화지구 대외협력 담당자 피오나(Fiona Lee)는 “홍콩 고궁박물관은 자금성을 모티프로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박물관 내부를 장식한 주황빛과 금빛은 중국 황실 분위기를 짐작하게끔 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자금성의 규모는 박물관의 층고를 높이는 걸로 대신했다. 덕분에 홍콩 고궁박물관 내부는 층수에 비해 개방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내부 천장에선 자금성의 황금 기와를 재현한 형태도 볼 수 있었다.
고궁박물관에서 나오면 녹지 공간이 바로 아트파크(Art Park)다. 아트파크는 서구룡 문화지구에 자리한 공원이다. 여러 작품을 전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각종 문화 시설에 둘러싸인 덕에 아트파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산책로를 따라 빅토리아 항구가 한눈에 담기는 전망 명소다. 아트파크는 홍콩 현지인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을 거닐다 보니, 가볍게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방문 당시, 날이 추워 공원에서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따뜻할 땐 피크닉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서구룡 문화지구에서 차로 10여 분이면 홍콩을 상징하는 번화가, 침사추이(Tsim Sha Tsui)에 도달한다. 그간 쇼핑, 밤 문화 등 시끌벅적한 분위기로만 침사추이를 지레짐작했다면 오산이다. 침사추이는 홍콩 문화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홍콩미술관(Hong Kong Museum of Art)은 침사추이를 대표하는 문화시설이다. 1962년 설립된 홍콩미술관은 홍콩 최초의 공립 미술관이다. 2019년 11월, 4년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해 이전보다 넓은 공간과 세련된 외관이 특징이다. 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만큼 볼거리도 다채롭다. 중국 유물은 물론 동서양 전반에 이르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각국 박물관, 미술관과 협업한 전시를 진행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방문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티치아노 컬렉션과 홍콩 예술가 조이 레응(Joey Leung)의 성격유형 별 예술 작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하나의 국가, 시대에 구애받지 않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단, 시기별 진행하는 전시가 달라지기에 방문 전 전시에 대한 정보 확인은 필수다.
가장 꼭대기 층에선 홍콩 출신 예술가 히코코 이토(Hikoko Ito)의 설치 미술을 진행 중이었다. 1년 365일에 해당하는 작은 상자가 모두 모인 이곳에선 각자의 생일 상자를 열어 낯선 이가 남긴 엽서를 받고 또 다른 이를 위한 엽서를 남길 수 있었다. 이전에 방문한 사람이 남긴 축하 메시지를 읽고 나중에 방문할 누군가를 위해 엽서를 만드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관람객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엽서를 꾸미는 과정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홍콩예술관에서 나와 스타의 거리를 걷다 보면 홍콩 야경 관람 명소, 빅토리아 덕 사이드(Victoria dockside)가 보인다. 빅토리아 덕 사이드에 잠시 머물며 노을을 감상하다보니, 외관을 식물로 장식한 건물이 눈에 띈다. 홍콩의 새로운 랜드마크, K11 뮤제아(K11 MUSEA)다.
K11 뮤제아는 2019년 오픈한 복합문화쇼핑몰이다. 그렇다고 단순 쇼핑센터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K11 뮤제아는 전 세계 디자이너, 예술가, 건축가를 비롯한 인물 100여 명이 10여 년간 설계하고 디자인한 결과물이다. 덕분에 방문객은 이곳에서 예술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할 수 있는 오페라 시어터(Opera Theatre)가 이를 증명했다.
오페라 시어터는 건물 가운데에 자리한 공간이자 K11 뮤제아의 상징이다. K11 뮤제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지니(Jeannie So Hiu Yan)는 “총 1800개의 수공예 크리스털 조명으로 장식한 오페라 시어터는 우주와 은하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엘리베이터 주위를 장식한 나무뿌리 모양 조형물은 모두 수공예 작품이라고. 공간 중앙의 커다란 구체 ‘골드 볼(Gold Ball)’은 K11 뮤제아의 심장이자 창의성의 발원지를 의미한다. 지니는 “골든 볼 내부에선 비정기적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K11 뮤제아 곳곳에는 예술이 숨어있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내부에는 독특한 형태의 의자, 테이블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예술가가 제작한 작품이다. 방문객은 상점을 구경하는 시간은 물론 쇼핑을 즐기다가 잠시 쉬어갈 때까지, K11 뮤제아에 머무는 것만으로 예술과 함께할 수 있다.
글=이가영 여행+기자
영상=석현진 여행+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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