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 비롯해
울고넘는 박달재에 남은 사연 애틋해
BTS 성지 모산 비행장에는 꽃 활짝
청풍호 케이블카, 옥순봉 출렁다리 인기
산 좋고 물 좋고 음식도 맛있는 제천을 찾았다. 서울 동북권에서는 접근성도 좋다. 청량리에서 KTX 이음을 타면 1시간 2분 걸린다. 넓은 제천이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관광택시를 타면 구석구석 다닐 수 있다. 관광택시를 타면 모두 반주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자차로 이동해도 무방하다.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는 청풍호 주변 도로를 달린다면 꽤 로맨틱하다.
▷ 박달재
“조선시대 박달 도령이 과거 시험을 보려고 험한 고개를 넘어가다가 쉬어가게 됐어요. 거기서 금봉 낭자를 만났는데, 그만 둘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박달 도령은 과거에 붙으면 다시 오겠노라 약속하고 한양으로 떠났어요. 금봉 낭자는 박달 도령만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그만 실망하여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어요. 금봉 낭자가 죽고 사흘이 지나 박달 도령이 찾아왔어요. 박달 도령은 시험에 계속 낙방하여 찾아가지 못했던 거예요. 금봉 낭자의 환영을 보고 쫓아가 껴안으려다 박달 도령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어요.”
위 내용은 청주 내덕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제천 박달재를 현장학습으로 찾은 날에 해설사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의 일부다. 박달재에는 박달 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전설의 고향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라 사실 확인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이별의 아픔은 시대를 초월해 존재한다. 작사가 반야월은 해방 직후 박달재를 넘다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부둥켜안고 우는 젊은 부부를 만났다. 서울로 떠나는 남편을 떠나보내며 이별하면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막막했다. 박야월은 이 사연에 영감을 얻어 1948년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를 지어 대히트시켰다. 가요무대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 중 하나다. 조선시대가 아니라 어디에도 있는 박달과 금봉은 가묘로 함께 안장되어 있다.
박달과 금봉을 위로하기 위해 조각된 불상도 있다. 현생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연꽃처럼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성각 스님이 2005년부터 느티나무 고목을 가져와 3년 2개월 간 만든 목굴암이다. 그 옆 작품 오백나한전은 일본에 수출될 뻔한 고목을 만류해 만든 작품이다. 오백 제자의 표정이 다양하다. 인생을 살다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을 담은 듯하다.
▷ 청평호 케이블카 & 옥순봉 출렁다리
충주에서는 충주호라 부르는 내륙의 바다를 제천에서는 청평호라고 부른다. 청평호 케이블카를 타면 발 편하게 청평호를 감상할 수 있어 제천 여행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케이블카에서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밑이 투명한 크리스털을, 겁이 난다면 일반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가격은 크리스털이 일반보다 5000원 더 비싸 왕복 2만 3000원이다. 작년 인근 옥순봉 출렁다리가 개통하면서 새롭게 관광객 발길을 끌어들이는 중이다. 다리 중간 철근 구조물이나 투명 유리로 시야가 확보된 공간이 있다. 발아래로 아찔한 광경이 펼쳐진다. 끊임없이 흔들거려 울렁울렁할 수 있으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어린아이처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출렁다리를 건너 옥순봉까지 올라가는 등산로는 땅 주인과 해결 못한 문제가 있어 막혀있다.
▷ 모산비행장
여행업계에서도 그저 왔다가 가기만 하면 빵빵 터지는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BTS가 다녀간 성지이다. 이곳 활주로에서 화양연화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비행장은 1950년대 만든 훈련장으로 산불 진화 헬기나 닥터 헬기의 이착륙은 있었으나. 전투기가 뜨고 내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민간주도로 반환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시민 요구가 받아들여져 소유권은 육군에 있지만, 관리 운영은 제천시가 맡고 있다. 시는 활주로 주변으로 계절마다 꽃을 심는다. 여름에 만개한 해바라기는 지고, 가을을 맞아 버베나가 활짝 피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벤치나 “괜찮아 잘될 거야” 같은 희망찬 문구를 적은 팻말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훌륭한 여행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주변 어린이집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이 맑게 웃으면 뛰어놀고 있었고, 평일에도 추억을 남기려고 방문한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공간이 넓어 대규모 공연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변에 카페도 속속 생겨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손에 들고 꽃구경하면 되시겠다.
▷ 의림지
지금은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지만,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만든 저수지였다. 현재는 수리시설이라기 보다는 유원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제천 10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넓은 호수 주변으로 버드나무가 호위하듯 운치 있게 서 있어 거닐기만 해도 좋은데, 다양한 볼거리이자 놀잇거리가 있다. 오리 배를 타고 호수 위를 노닐 수 있다. 인공 분수와 폭포가 생겨 보는 맛이 배가됐다. 저수지 옆 용추폭포 주변으로 투명한 데크 길을 만들었다. 이 위를 걸으면서 폭포 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싹 다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눈이 맑아지고 귀가 뻥 뚫린다.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이 말년을 보낸 장소였다. 우륵정과 우륵대가 남아있다.
▷ 용담폭포
진짜 폭포는 따로 있다. 금수산을 꽤 올라가야 한다. 웅덩이가 두 번 파인 3중 폭포다. 높이가 30m에 달해 한눈에 폭포가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길다. 여느 폭포와 마찬가지로 비가 온 다음 날 가면 우렁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변에 노송과 동백나무 숲이 울창하며, 넓은 바위가 널려있다. 금수산에 약초가 많아 폭포수가 건강에 좋다는 설이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찾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 자양영당
제천은 의병운동의 중심이었다. 자양명당은 조선말 구국 정신을 계승하고자 만들었다. 당시 13도의군 도총재인 의암 류인석 선생 휘하에서 일본과 맞선 의병들은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숭의사 안 병풍은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적지 않은 백지로 뒀다. 의병전시관에는 전국 의병을 선도한 제천 의병에 대한 기록이 빼곡하다. 캐나다 출신 영국 언론인은 처참한 순간은 사진과 기록으로 남겼다. 우뚝 솟은 기념탑이 있으며, 텃밭에는 무궁화를 심었다.
[제천(충북) =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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