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살리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으로 내지는 옛 것을 동경하는 움직임이 부쩍 늘었다. 대표적인 것이 한옥이다. 기와, 대청마루, 서까래, 온돌 등으로 대표되는 한옥에 대한 향수가 현대인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분위기다. 다만 너무 낡았거나, 보존 및 유지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한옥의 인기에 힘입어 한옥도 한국관광 품질인증제(KQ인증, Korea Quality)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이 인증제는 서비스품질 평가를 통과한 관광업소 정보를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국가 공인 제도다.
인증은 서류평가, 현장평가, 최종 심의를 거친다. 현장평가는 관광·인증 분야 전문가가 시설 및 서비스, 인력의 전문성, 안전관리 부문에 대해 점검한다. 인증 업소는 소방·위생진단 컨설팅 등도 받는다. 품질인증제는 향후 ‘한국관광 품질관리사업’으로 개편 예정이나, 기존 인증 업소는 2026년 상반기까지 관리·지원받는다. 여러 절차를 거쳐 인증한 숙소인 만큼, 믿고 투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경기도에 KQ인증을 받은 한옥체험업 업소는 총 5곳이다. 수려한 자연과 한옥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정취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한옥 숙소를 소개한다.
1. 양평 ‘산온’
양평 강하면에 자리 잡은 한옥 숙소 산온(山穩)은 ‘산 아래 나만의 안온한 하루’를 선사하고자 2021년 11월 오픈했다. 660㎡(약 200평)의 공간을 한 팀이 오롯이 누리는 독채 구조다. 멀리 양자산이 보이며, 주변에도 산이 포근하게 숙소를 감싸고 있다. 또한 자쿠지(노천탕)를 마련해 산세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50년이 넘은 구옥을 리모델링해 지어졌으며, 서까래와 보를 최대한 살렸다. 정원엔 단풍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석류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손님을 반긴다. 내부는 매우 현대적인 양식으로 설계해서 인상적이다. 마치 북유럽 어느 주택을 보는듯한 가구 배치와 형태지만, 톤 다운된 원목의 느낌을 잘 살려 기존의 한옥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실내에는 창밖으로 자두나무가 보이는 욕조가 있으며, 요리와 식사 편의성을 위해 아일랜드식 주방을 갖췄다. 탁 트인 하늘과 산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앞마당은 이곳의 자랑이다. 옆마당에선 바비큐를 할 수 있고, 뒷마당엔 돌담을 보며 다도를 즐길 수 있도록 별도 공간이 마련됐다. 모든 공간에선 밖으로 향하는 통유리 창이 있어 앞마당 툇마루와 연결된다.
자연과 어우러짐을 중시하는 산온은 환경 보호에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생분해가 가능한 일회용품만 사용하고 있으며, 샴푸, 세제 등은 비건 제품만 사용한다.
2. 가평 ‘취옹예술관’
가평군 상면 축령산 자락의 취옹예술관은 2003년 5월 개관했다. 여행객과 예술인을 위해 미술관과 숙소를 같이 운영한다. 자연 친화 숙박, 문화 체험, 연수 및 세미나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취옹(炊翁)’은 ‘불 때는 사람’이란 의미로, 이곳을 직접 지은 도예가 김호 관장의 호다. 김 관장은 지역 주민에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이곳을 지었다.
솔향이 그윽한 이곳 황토 온돌방은 각종 건축 자재로 인한 유해 물질 증후군 걱정이 없다. 병풍처럼 펼쳐진 축령산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다도 수업도 마련했다. 주말엔 통나무 의자에 앉아 ‘불멍’을 할 수 있도록 불을 피워준다.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만큼, 한옥 구조가 궁금한 손님에게 직접 지붕의 형태 등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이곳 모든 객실은 창문 밖으로 너른 마당이 보인다. 또한 TV를 설치하지 않았는데, 온전히 자연을 누리며 숨 쉬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늘 바쁘고 여유 없이 지내는 우리네 삶에 쉼표 하나 찍어볼 기회를 선물한다.
취옹예술관은 가평의 대표 여행지 아침고요수목원이 전방에 있어서 인기다. 멀지 않은 곳에 슈퍼와 여러 식당이 있어 편리하다. 예술관 내부의 미술관은 기획전과 상설전을 꾸준히 열고 있다.
3. 연천 ‘조선왕가’
연천군 향토문화재 17호로 지정된 조선왕가는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李芹)의 고택 염근당(念芹堂)을 연천 자은산 기슭으로 옮겨 다시 지은 곳이다. 2008년 해체를 시작해 2011년 이건 완료했다.
염근당은 ‘혼탁한 물에서도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미나리의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1800년대 창건해 1935년에 99칸으로 중수했다.
원래 서울 종로구 명륜당에 자리했으나, 성균관대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사라지기 전 남권희·김미향 부부가 매입해 옮겼다. 도편수 최명렬 선생과 와공 이도경 선생이 이건과 복원에 참여했다. 궁궐을 지을 때 쓰는 잘 말린 금강송을 사용해 지어 일반 한옥보다 반듯하며 위엄 있는 인상을 풍긴다.
후원인 회덕당(구 자은정)은 종로에 있을 때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방문했다.
‘광대의 슬픈 전설’로 유명한 재인폭포가 가까이에 있어 함께 방문하기 좋다. 최근 경원선 연천역이 개통한 만큼 접근성도 좋아졌다. 한옥 투숙 외에 ‘로열 카바나’ 글램핑도 이용할 수 있다.
4. 양평 ‘오후다섯시’
양평 개군면의 정갈한 한옥 오후다섯시는 2021년부터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아스라이 해가 뉘엿거리는 오후 다섯 시에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라 오후다섯시로 명명했다. 독채 전체를 사용하는 숙소다. 잔디가 있는 마당을 포함해 990㎡(약 300평)의 규모다.
한옥 숙소 중 비교적 젊고 모던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레트로한 턴테이블과 블루투스 스피커, 커피머신, 스타일러까지 마련했다. 소파를 비롯한 현대식 가구는 한옥과 이질감이 없도록 배치했다.
이곳은 무위(無爲), 흘러가는 그대로 두는 상태에 도달하도록 꾸며졌다고 한다. 비움을 통해 머무는 이가 차분하게 쉴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특별한 멋보다는 집 같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오래 머물고 싶은, ‘살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곳이다.
정남향으로 지어진 이곳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양각색의 햇볕이 구석구석 스민다. 오후 다섯 시에는 가장 아름다운 빛과 공간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내부 단열이 탁월해 일 년 내내 따뜻하다.
남한강을 한눈에 보는 이포보 전망대, 등산하기 좋은 파사성, 코스모스가 피는 당남리섬이 가까이에 있다.
5. 양평 ‘한옥마을 황토펜션’
강하면 남한강 변에 자리한 양평 한옥마을 황토펜션은 인기 관광지 들꽃수목원과 10분 거리에 있다. 서울의 한 고택을 매입해 양평에 다시 지었다. 지금은 길상사로 탈바꿈한 대원각의 자재를 사용했다는 추측이 전해진다.
한때 인기리 방영한 KBS ‘꽃보다 남자’의 배경으로 등장했고, 여러 방송에서 나왔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고, 스몰 웨딩 등 행사 장소로도 인기다.
서울에 살던 현 주인 부부가 건강을 위해 거주 목적으로 구매했으나, 워낙 잘 지어진 한옥이라 ‘다른 사람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장식을 거쳐 펜션으로 운영 중이다.
한옥에서는 보기 드문 2층 구조로 지어진 이곳은 토종 소나무 춘양목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황토로 내벽을 마감하고 한지를 덮어서 친환경적이다. 황토 벽난로, 황토 찜질방도 이용할 수 있다. 연꽃이 피는 연못도 있고, 옆에 정자가 있어 운치 있다. 옛 농기구, 가마솥 등이 있는 헛간도 장식 차원에서 마련해 뒀다.
한옥마을 황토펜션은 전기차 충전을 지원한다. 여름엔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다. 텃밭의 무공해 채소도 손님에게 제공한다. 주변에 카페, 음식점 등이 다양하며, 취사 시설도 있다.
글=유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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