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누구에게는 매번 만나도 새로운 존재이기도, 또 다른 이에게는 지루한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설렘이기도 한 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일로 접하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여전히 여행이라는 존재를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고 느낄까. 일로써 여행을 마주하는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책 4권을 소개한다. 일로서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희망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맑은 날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아
김현지/북커스
‘맑은 날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아’는 승무원 김현지의 여행법이 담긴 책이다. 비행 일정에 따라 언제, 어떤 도시를 방문할지 모르는 승무원의 일상을 선보인다. 특히 남들과 조금은 다른 시기에 방문하는 여행지에서 작가가 본인만의 방식으로 여정을 즐기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말을 타거나 사막투어를 하는 등 현지인처럼 현지에 스며드는 것이 바로 김현지 작가만의 여행법이다.
알록달록 색을 모아 놓은 무지개 같은 사람보다는 비록 하나의 색일지라도 여러 빛깔을 품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햇살을 만나게 되면 더 아름답고 영롱한 빛깔을 내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래서 누군가 북아프리카 끝자락의 쉐프샤오엔에 간다면, 나를 떠올려 주길 바래어 본다.
– 「몸은 아프리카에, 머리는 아랍에, 눈은 유럽에」 중에서
작가는 여행하며 화려하고 멋진 경험보단 소소한 행복에 주목한다. 해가 질 무렵 혼자 해안을 거닐며 두 눈 가득 바다를 담거나 남미 여행 중 만난 동행자와 서로의 물건을 나누며 행운을 빌어주는 것이 그 예다. 이 밖에도 작가가 일하며 전 세계를 누비며 겪은 다채로운 경험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여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성장 과정도 책을 읽는 중 즐길 수 있는 묘미 중 하나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에서 걱정을 내려놓고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하는 등 여행이 없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여러 가치를 배운다. 이렇게 여행을 통해 긍정적인 태도를 얻게 된 김현지 작가는 오늘도 내일의 여정이 궁금하다. 책을 읽고 김현지 작가의 여행에 온전히 스며들어 봤다면, 그와 함께 내일을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
낯선 곳에서 굿모닝
신미정/북커스
안정적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여행 에세이 ‘낯선 곳에서 굿모닝’은 신미정 아나운서의 퇴사 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는 더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그간 하던 일을 그만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아나운서라는 일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정규직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도 그는 더 자유롭고 즐거운 삶을 위해 새로운 길을 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떠난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여행이 고마운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서먹하고 어색한 것들에 매 순간 익숙해져가며 이미 익숙해져버린 수많은 것들에게 다시 설레게 되는 일. 여행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일. (……) 사실 내가 정말 바라는 건 어쩌면 이런 거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끝나고 난 후의 시간들이 허무와 인내의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여행이 도피나 탈출이 아닌 것. 그냥 일상이 축제이고 여행이기를. 그걸 꿈꿔.
– ‘에필로그’ 중에서
물론 신 작가가 겪은 모든 일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정신이 쏙 빠질 만큼 혼란스러운 일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힘겨운 상황도 있다. 그럼에도 그저 여정을 따라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도 작가처럼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여행이라는 일
안시내/넥서스북스
여행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한 적 있다면, ‘여행이라는 일’을 읽고 방향성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여행 크리에이터 안시내가 여행 에세이 ‘여행이라는 일’로 돌아왔다. 안시내 작가는 대학생이던 2010년대, 홀로 세계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간 안 작가가 여행지에 관한 소개나 여정 중 느낀 점을 담은 여행기 형식의 글을 썼다면, 이번 책은 조금 다르다.
안 작가는 이번 책에서 여행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아무런 계획 없이 단순히 여행이 좋아 여행작가를 희망했던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때, 단순히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소개한 책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행이라는 일은 여행작가라는 업을 택하게 된 계기부터 일을 하며 필요한 역량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심지어 작가는 여행작가가 돈벌이하는 법과 수익에 대해서도 공개한다. 작가 스스로가 겪은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일기를 쓰듯 친근하게 풀어내기에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비단 여행작가가 꿈이 아닐지라도 여행이라는 일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마다 도전하는 사람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말이 가득한 덕이다. 특히 어느 하나 특출난 점 없어 좌절한 적 있는 모든 이에게 작가는 평범함으로써 오히려 잘할 수 있는 점을 알려주는 등 우리 삶에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여전히 도전하는 게 좋고,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용기가 있다. 내게 분명한 나의 의지를 동아줄 삼아 꼬옥 붙들고, 분명하지 않은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안시내 작가
혼배낭
권현숙/헤르몬하우스
여행을 통해 배우는 가치를 간접적으로 혹은 미리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혼배낭’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혼배낭은 권현숙 작가의 취재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취재 여행기라는 말이 생소하지만, 말 그대로 취재를 위한 여행을 하며 경험한 일을 엮은 것을 말한다.
권현숙 작가는 본래 소설 작가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루마니아, 몽골 등 여러 지역을 취재했다. 작가의 취재 이야기는 여느 여행기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목숨을 건 여행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일정을 진행하는 중 위험한 상황도 많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내내 여행이라는 일이 어려우면서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러한 점이 오히려 독자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책에는 작가가 취재라는 목적에 따라 두려움을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이에 평소 겁이 많아 도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혼배낭을 읽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생애 첫 (취재) 여행기를 내면서 새삼 알게 됐다. 내가 별별 데를 다 가고,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구나. 때로는 생명의 은인도 만났고 군복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들에게도 잡혔고, 장총 들이대는 (말로만 듣던) 사하라 뗴강도들에게도 포위당했다. 취재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유능한 가이드 없이, 의지할 일행도 없이, 혼자 겪는 위험과 감동의 여정이었다.
-작가의 말
글=이가영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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