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녹음으로 산과 들이 물드는 요즘, 남양주 광릉 옆 위치한 ‘봉선사’도 여름을 맞았다.
연꽃이 가득한 못과 울창한 숲길, 깊은 역사를 간직한 봉선사의 보물과 전통찻집까지.
여름을 맞아 더 다채로워진 봉선사를 빠짐없이 즐길 수 있도록 ‘봉선사 나들이 포인트’ 다섯 가지를 골라보았다.
01 진흙탕에서도 꽃을 피우는 고결함, 연꽃 호수 |
더러운 물에서도 때 묻지 않은 꽃을 피운다고 해 유교와 불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연꽃.
봉선사 입구를 지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이런 연꽃이 가득한 호수다.
멀리서 볼 땐 연잎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향긋한 꽃 내음과 함께 색색의 연꽃이 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상아색과 화사한 진분홍색 꽃잎이 짙은 초록색의 연잎과 잘 어울린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호수 앞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연못을 바라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린 물에서도 활짝 피어난 연꽃을 보니 마음이 깨끗이 씻기는 듯하다.
호수 규모도 굉장히 크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산책로가 있어 가까이서 연꽃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기도 좋다.
연못 한쪽엔 수련도 피었다. 연꽃보다는 조금 작지만, 수면 위 잔잔히 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호숫가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연등으로 꾸민 작은 터널도 있다. 유명 캐릭터 모양 연등부터 화려한 종이공예를 붙인 연등까지 개성도 종류도 다양하지만, 소원을 염원하며 만든 마음 하나는 똑같다.
터널을 지나 전각으로 가는 길엔 작은 불상이 보인다. 연꽃 호수를 배경으로 은은히 미소 짓는 불상 아래 소원 돌탑이 가득하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히 소원 돌을 얹어보자.
연꽃을 보며 깨끗해진 마음으로 빈 소원이니, 정말 이뤄질지도 모른다.
매년 연꽃이 활짝 피는 7월 말과 8월 중순에는 연꽃 축제도 연다. 올해는 8월 5일부터 12일까지 8일 동안 진행한다. 축제 기간에 맞춰 방문하면 전통차 시음, 연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02 봉선사만의 특별한 한글 사랑! 한글 현판과 예불 |
두 번째 포인트는 입구에서부터 나타나는 봉선사만의 한글 사랑이다. 누구나 쉽게 읽고 부를 수 있도록 한글로 정갈하게 쓴 ‘운악산 봉선사’. 보통은 한자를 사용하는 곳에 한글이라니, 범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어려운 한자 대신 쓰인 한글은 봉선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못에 걸린 풍등, 중심 전각이자 법회가 열리는 ‘큰 법당’, 큰 법당 앞 ‘청풍루’까지 크고 작은 곳에 다양하게 쓰였다.
특히 큰 법당은 ‘대웅전’을 한글로 바꿔 지은 이름으로, 최초로 한글 이름을 사용한 전각이다. 과거 팔만대장경 번역을 바로 이곳, 봉선사에서 시작해 그 역사를 계승하고 기리고자 한자 대신 한글을 사용한다고 한다. 커다란 현판뿐만 아니라 건물 외벽에 예불을 옮겨 적은 나무 간판, ‘주련’까지 모두 한글로 적어놓았다.
봉선사에서는 한자로 외는 예불마저 모두 한국어로 번역해 한글로 외운다.
큰 법당 내부는 불경을 하나하나 한국어로 번역해 파놓은 나무판으로 장식했다.
예불을 시작할 때 처음 외는 불경 ‘천수경’과 불경이라면 가장 먼저 흔히 떠올릴 ‘반야심경’도 모두 한글로 외운다.
그 덕분에 한자로 외울 때는 와 닿지 않는 내용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봉선사가 아니면 경험해 볼 수 없는 한글 예불, 참여해서 직접 외워도 좋고 잠깐 방문해 듣기만 해도 좋다.
03 국가와 봉선사의 보물 국보 397호 봉선사 대종 |
오직 ‘이것’만을 위해 봉선사에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바로 조선 전기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국보 397호, ‘봉선사 대종’이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 모양의 장식이 달려있고, 곳곳에 연꽃잎과 보살상을 조각해 꾸몄다. 조선 초기 예종 1년, 왕실의 명을 받아 주조했으며 당시 문신이었던 ‘강희맹’이 직접 지은 명문까지 새겨져 있다.
봉선사 대종은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 온갖 국난을 이겨내고도 살아남은 역사 깊은 종이다. 진짜 대종은 안전을 위해 청풍루 앞 전각 1층에 보관해 두고, 전각 2층의 대종을 본떠 만든 종을 주로 치거나 연말 송년 행사 때만 진짜 종을 친다고 한다.
치지만 않을 뿐이지, 개방된 전각에 전시해놨기 때문에 누구나 종을 구경할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낡은 종이지만, 큰 법당보다 더 오래 제자리를 지킨 대종의 웅장함이 울타리 너머까지 흘러넘친다.
새벽이면 새로운 하루와 예불의 시작을 알리는 청명한 종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큰 종소리를 따라 메아리가 울리며 마음속 근심과 잡념을 걷어낸다. 봉선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면 타종 체험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04 향긋한 전통 음료와 다과까지! 파드마와 봉향각 |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운 요즘, 기와 그늘에 더위를 피해도 좋지만 봉선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는 실내 카페는 어떨까. 봉선사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카페가 두 곳이나 있다. 첫 번째는 큰 법당 근처 ‘봉향각’이다.
한옥 형태 건물이며 커피와 함께 전통차, 종교 물품까지 함께 판매한다. 봉선사의 또 다른 호수가 보이는 야외 좌석도 있지만, 단풍과 설산이 아름다운 가을·겨울에 이용하길 추천한다.
대신 여름에는 흐드러진 연꽃을 구경하며 커피와 빵을 즐길 수 있는 봉선사 ‘파드마’를 추천한다. 파드마는 불교 용어로 ‘연꽃’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곳은 봉향각보다 조금 더 현대적인 미가 가득하다.
일반 카페처럼 안팎을 꾸며놓았지만, 곳곳에 전통 도자기나 전등 모양의 조명 등 전통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또 연못 바로 앞에 있다 보니, 연잎 차나 연 꿀빵 등 연꽃과 연근으로 만든 메뉴들도 있다.
연꽃을 바라보며 향기로운 연잎 차와 아삭한 연근이 들어간 빵을 먹어보자.
가게 안에는 봉선사 소속 스님이 출간한 책도 구비되어 있어 여유롭게 책과 다과를 즐길 수 있다.
05 신비로운 비밀의 숲, 광릉 숲길 |
봉선사의 마지막 포인트는 바로 광릉 숲길이다. 봉선사 근처에는 세조와 정희왕후 윤 씨의 무덤, ‘광릉’이 있다. 이 광릉을 둘러싼 광릉 숲은 과거 왕실 사람만 입장할 수 있던 신비로운 곳이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가 관리하다, 현재는 산림 연구소가 관리하는 중이며 일반인들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모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덕에 독특한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어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 숲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이런 귀한 숲길을 오직 봉선사 템플 스테이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다.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소수 인원만이 신비로운 광릉 숲에 발을 들일 수 있어 봉선사에서는 이 숲을 ‘비밀의 숲’이라 부른다.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특별한 광릉 숲길을 거닐고 싶다면 템플 스테이를 신청하는 것도 추천한다.
그러나 봉선사 주변으로 국립 수목원과 이어진 광릉 숲길도 있다. 비밀의 숲에 못 들어가 아쉬운 대신 이 광릉 숲길이라도 걸어보았다. 그냥 아스팔트 도로나 흙길과는 온도부터 다르다. 시원한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불어와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식힌다. 광릉 숲길은 봉선사 입구부터 광릉을 지나 국립 수목원까지 이어져 있다.
봉선사부터 수목원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다. 날씨가 아주 덥다면 차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무성히 자란 풀들과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끝없이 만들어 내기 때문에 여유롭게 걸어가는 것도 추천한다. 식물들이 가득 내뿜는 피톤치드로 맑은 공기도 마시고 시원한 그늘을 따라 수목원까지 쭉 걸어가 보길 추천한다.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 봉선사
글= 장주영A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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