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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감독이 콕 집은 조성진, 체코는 ‘프라하의 봄’에 돌아온 ‘황태자’를 열렬히 맞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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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 전 유럽 배낭여행 할 때 프라하에서 클래식 공연 관람을 꼭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체코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클래식 공연과 오페라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건 영국과 이탈리아에도 있다. 다만 프라하는 공연장 문턱이 훨씬 낮아 누구든 수준급 공연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15년 전 꿀팁은 오늘에도 통한다. 예나 지금이나 프라하에 가거든 공연 하나쯤은 필수로 봐야 한다. 그 옛날 허리띠 졸라매고 유럽을 누비던 대학생에게 영혼의 양식을 나눠주던 고마운 프라하는 여전했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공연 그리고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회까지, 체코에서 보낸 일주일은 내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했다. 중세에서 멈춘 것만 같은 도시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주는 극적인 장치는 바로 음악이었다.

5월 24일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조성진 / 사진=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프로그램 가격이었다. 조성진 공연뿐 아니라 대부분 공연이 최대 1200~1500코루나(약 7만1000원~8만9000원) 선이다. 조성진 공연의 경우 400코루나(약 2만4000원)부터 시작했다.

‘음악’ 하나만 보고 떠난 5월의 프라하 여행을 소개한다. 음악적 지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즐기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도 충분했던 ‘프라하의 봄’이었다.

# 제 79회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올해로 79회를 맞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체코는 물론 전 유럽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제 중 하나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 거장 지휘자는 물론 당대 유명한 클래식 연주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2024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5월 12일부터 6월 3일까지 약 3주간 진행했다. 축제 기간 거의 매일 콘서트가 펼쳐져 체코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올해 축제는 더욱 공들여 준비했다. 2024년은 체코 출신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가 탄생한 지 200년이 되는 해다. 체코 정부는 스메타나를 기리기 위해 2024년을 ‘체코 음악의 해’로 선포했다. 스메타나는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 개막을 알리는 공연은 79년 동안 한 해도 빼지 않고 스메타나가 작곡한 ‘나의 조국’으로 꾸몄다. 노래는 같지만 매번 연주단은 달라진다. 올해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를 맡았다.

한국에서 온 미디어와 따로 만남을 갖고 질의 응답을 하고 있는 야쿱 흐루샤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체코 출신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지휘자 중 한 명인 야쿱 흐루샤(Jakub Hrůša) ”스메타나는 체코 클래식의 아버지”라며 “체코도 유럽 어느 나라보다 더 음악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의 음악은 시간이 얼마가 지났든 항상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있어서 19세기 작곡가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 체코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에서 만난 조성진

루돌피눔 공연장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블타바 강변에 위치한 루돌피눔(Rudolfinum)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클래식 공연장으로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드보르작 홀은 프라하 사람들이 사랑하는 체코 출신 음악가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의 이름에서 따왔다. 1885년 문을 연 루돌피눔은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클래식 연주가와 지휘자들에게 있어서 꿈의 무대로 꼽힌다.

루돌피눔 앞 광장에 서있는 안토닌 드보르작 동상(왼쪽), 조성진 공연 포스터 옆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올해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에는 특히 한국인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공연을 펼쳤기 때문이다. 5월 24일 오후 7시,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루돌피눔은 다양한 국적의 관람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프라하 현지에서는 축제 시작 전부터 조성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다음 해에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에 무대에 올랐던 조성진이 8년만에 프라하를 다시 찾는다고 이곳저곳에서 기대감을 표시했다. 조성진 공연 티켓은 지난 1월 일찌감치 매진됐다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객석을 채웠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부터 지긋한 노부부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1층과 2층 그리고 무대 위 합창단 석까지 꽉 들어찼다. 이윽고 8시 5분 무대 뒤 문이 열리더니 까만 정장 차림의 조성진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큰 박수로 그를 맞았다. 한 손에 까만 손수건을 들고 온 그는 피아노 한쪽을 잡고 가볍게 인사한 다음 연주를 시작했다.

열정적인 연주를 펼치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 사진=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24일 조성진은 1부에서 모리스 라벨의 ‘미뉴엣 앤티크’ ‘소나티네’ 그리고 ’밤의 가스파르(제 1곡 물의 요정, 제 2곡 교수대, 제 3곡 스카르보)’를 연주했다. 2부에서는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연작 ‘순례의 해’ 중 ‘이탈리아’ 전곡을 연주했다.

공연 시작 전 드보르작홀 모습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무대가 생각보다 가까워서 놀랐다. 14열 2번, 가운데가 아니라서 걱정했는데 시야가 생각보다 좋았다. 섬세한 손가락 움직임까지도 보였다. 첫 곡이 끝나고 조성진은 검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는 무심하게 툭 내려놓았다. 의자 절반 정도에 엉덩이를 걸쳐 앉은 그는 격정적으로 휘몰아칠 때는 발끝을 세우기도 하고 먼 허공을 바라보면서 감정을 끌어 올리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른 감동이 전해졌다. 영상에서는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볼 수 있는데 공연장에서는 전체적인 움직임을 볼 수 있어서 더 풍부한 표현을 느낄 수 있었다. 손뿐만이 아닌 온몸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움직임이 커서 놀랐다.

커튼콜 중인 조성진 / 사진=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조성진은 이날 모두 6번의 커튼콜을 했다. 4번 커튼콜을 한 다음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앙코르 곡으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려줬다. 앙코르 후에도 두번 커튼 콜을 더 했다. 사방에서 박수갈채를 보내는 청중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왼쪽 가슴에 손을 살짝 올리고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한국인 관객이 많은 것을 알아본 듯한 벅찬 표정이었다. 마지막 퇴장할 때는 손 인사도 크게 해 보였다.

관객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조성진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9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상을 받고 수줍게 웃어 보이던 조성진 이미지가 강력히 남아 있다. 여드름 난 앳된 소년 같았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멋진 무대를 보여준 조성진이 자랑스럽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뿌듯한 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도 감동은 쉬 가시지 않았다. 루돌피눔 계단 앞에서 괜히 현지인에게 조성진 공연 어땠냐고 물어보고 나 역시 한국에서 왔다고 부연 설명까지 했다.

공연 직후 리셉션장에서 조성진. 조성진에게 꽃을 주고 있는 사람이 홍영기 주체코 한국대사다.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공연 직후 루돌피눔 2층 홀에서 리셉션이 열렸다. 홍영기 주체코 한국대사가 참석한 리셉션에서 조성진은 “8년만에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를 다시 찾게 돼서 기쁘다. 조만간 또 무대에 서고 싶다”고 짧게 소감을 말했다.

파벨 트로얀(Pavel Trojan)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 총감독은 “정말 멋진 공연이었다 조성진은 항상 최고”라며 “한국인이 많아서 조성진이 더 기쁘게 연주를 했던 것 같다. 박수도 함성도 커서 놀랐다”고 말했다.

체코(프라하)=홍지연 여행+ 기자

*취재 협조=체코관광청 한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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