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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最古), 최초의 무게 지켜온 서울 명당 호텔 110년 여정 [호텔 체크人]

여행 플러스 조회수  

■이정욱 웨스틴 조선 서울 총지배인

110주년 맞은 최고(最古)호텔

황제의 명당에서 세계의 안방으로

한 세기를 넘어선 서울의 랜드마크

매 순간 고객과 쌓아온 신뢰가 원동력

화려한 호텔이라도 신뢰 없이는

110년을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이정욱 웨스틴 조선 서울 총지배인

웨스틴 조선 서울이 개관 110주년을 맞았다. 국내 호텔 업계에서 웨스틴 조선 서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게를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지켜왔다.


옛 조선호텔의 모습 / 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14년 10월 10일, 환구단 터 옆. 붉은 벽돌과 흰 화강암이 어우러진 웅장한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치형 창문과 뾰족한 첨탑은 유럽 고성을 옮겨놓은 듯 이국적 풍경을 그려냈다. 조선호텔의 탄생이었다. 한반도 최초 근대식 럭셔리 호텔이 등장한 순간.

1만 3223㎡ 넓은 부지에 4층 본관과 2층 별관, 총 72개 객실. 당대 최대 규모였다. 최초 프렌치 레스토랑 ‘팜 코트’, 최첨단 ‘콘서트룸’과 ‘연회장’. 조선호텔은 이미 문화예술 중심지였다. 개관과 동시에 세계 귀빈들의 필수 방문지였다.


현재 웨스틴 조선 서울 외관 / 사진=권효정 기자

그런데, 호텔이 들어선 자리 예사롭지 않다. 바로 고종 황제가 직접 점찍은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사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영험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풍수 전문가들을 모아 전국을 뒤진 끝에 찾아낸 최고의 명당. 지금의 웨스틴 조선 서울 자리다.


황궁우의 모습 / 사진=권효정 기자

땅의 기운이 넘치는 환구단과 하늘 기운이 내려오는 황궁우의 기막힌 조화. 고종은 원래 있던 남별궁을 과감히 허물고 환구단을 세웠다. (참고로, 지금 남아있는 환구단은 엄밀히 말하면 환구단 일부인 ‘황궁우’다.)

하지만 역사는 고종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914년, 일제는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땅은, 이제 사람들이 꿈을 꾸는 공간이 됐다. 세월은 흘렀지만, 장소의 정기는 그대로다. 철도호텔은 웨스틴 조선 서울로 이름을 바꿨지만, 황궁우의 묵묵한 응원 속에 웨스틴 조선 서울은 110년간 최고(最古) 호텔 자리를 지켜왔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쟁, 그리고 경제 부흥까지. 웨스틴 조선 서울은 한국 근현대사 무언의 증인이었다.


이정욱 웨스틴 조선 서울 총지배인 / 촬영=조형주 영상 PD

여행플러스는 이정욱 웨스틴 조선 서울 총지배인을 만났다. 인터뷰는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진행됐다. 이 총지배인은 2000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총지배인까지 올라선 케이스다.

유구한 역사 속, 호텔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웨스틴 조선 서울의 라운지앤바 / 사진=권효정 기자

웨스틴 조선 서울 개관 101주년 기념 갈라디너 ‘가스트로노믹 런웨이(Gastronomic Runway)’를 꼽고 싶다. 고객뿐 아니라 직원도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파티였다. 한 달간 집중 훈련을 거친 직원들이 런웨이를 걸으며 우아하게 서빙했다. 마지막 순간, 주방에서 묵묵히 일하던 셰프들이 하얀 유니폼을 입고 당당히 무대를 걸어 나오는 모습은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겼다. 처음엔 실수를 우려했지만, 본 행사에서 직원들은 완벽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낸 직원들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마음을 사로 잡는 호텔 내 장소를 꼽자면?

웨스틴 조선 서울의 심장은 단연 ‘현관’이다. 2000년 입사 이후 매일 아침, 현관을 통과하는 순간은 여전히 특별하다. ‘오늘도 들어서는구나’와 함께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현관은 수많은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VIP부터 일반 고객까지, 기쁨과 슬픔을 안고 오가는 사람들 희로애락이 이곳에 집약된다. 흥미로운 점은 1970년 이후 한 번도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낡았다’고 평하지만, 변하지 않는 자체로 의미가 깊다.

조선호텔과 첫 만남을 들려달라. 어떤 계기로 호텔리어의 길을 걷게 됐나.


이정욱 웨스틴 조선 서울 총지배인 / 촬영=조형주 영상 PD

인생의 궤적은 예상치 못한 곳을 향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딱딱한’ 학생에서 호텔 총지배인으로 여정은 드라마틱했다. 졸업 즈음, 국내 유수 신문사와 영자지 입사를 희망했다. 영화 배급에도 관심이 많았다.

IMF 세대 숙명일까. 취업은 시급한 과제였다. 깊이 있는 준비보단 빠른 사회 진출을 택했다. ‘마케팅’이란 키워드를 따라 우연히 조선호텔의 문을 두드렸고, 처음엔 ‘그저 그런 호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입사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호텔 상징성·중요성, 그리고 내가 잡은 기회의 크기를 깨달았다. 호텔 인식뿐만 아니라 관점도 변했다. 정치 외교학을 전공하며 현상을 비틀어 보던 성격에서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호텔리어로 탈바꿈했다. 삶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자부한다. 밤 11시, 집에 돌아와 LP를 돌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우연한 계기였지만, 지금 보니 잘한 선택이었다. 영화와 음악에 대한 열정,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호텔 업무와 시너지를 냈다. 대학 시절, 월요일 조조 영화를 혼자 보며 느꼈던 감성이 지금은 호텔 마케팅·기획에 녹아들었다. 매년 여름 아트 페스티벌을 열어 록 밴드나 힙합 아티스트를 초청한다. 110년 된 호텔이라고 꼭 올드해야 하나. 겉으로는 전통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의 역동성을 잃지 않고 있다.

웨스틴 조선 서울 110년 역사의 숨겨진 원동력은 무엇인가.


웨스틴 조선 서울의 라운지앤바 / 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110년 역사는 단순한 시간의 축적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유산이다. 대장정의 주역은 고객과 직원이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조선호텔이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고객과 굳건한 신뢰 관계 덕분이다. 아무리 화려한 호텔이라도 신뢰 없이는 110년을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호텔의 진정한 ‘고유한 헤리티지’는 흔들림 없는 신뢰 관계에 있다. 매 순간, 매 만남에서 쌓아온 신뢰야말로 진정한 원동력이다.

세대를 넘어서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나.

시대를 관통한 핵심 가치는 ‘퍼스트 투 파이니스트(First to Finest)’다. 슬로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조선호텔 정신이자 DNA다. ‘퍼스트’는 고객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파이니스트’는 노력의 결과를 최고로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시대는 변해도, 본질은 그대로다.

고객 관리 비법이 궁금하다

모든 호텔에서 VIP 관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웨스틴조선서울 VIP 관리는 디테일에 초점을 맞춘다. 고객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디테일의 시작점이다.

VIP 정의도 새롭게 해석한다. 단순히 ‘귀빈’(Very Important Person)을 넘어서, 약간 공격적일 수 있지만, ‘감동을 주는 사람’(Very Impressive Person)이란 표현을 생각해 봤다. 그냥 두툼한 지갑을 가진 사람보단, 호텔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사람. 호텔에 감동을 주고, 감동을 받는 이들이야말로 현 시대에 걸맞은 VIP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의 맛과 멋을 담은 ‘로컬 경험’, 조선호텔만의 접근법은?


프레지덴셜 스위트 객실 / 사진=권효정 기자

웨스틴 조선 서울은 개관 이래 외국인 방문객 메카로 자리잡았다. 객실 이용객 80%가 외국인이다. 한국 문화 자산과 서울 중심부란 지리적 강점을 십분 활용한다. K-컬처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이를 반영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이제는 K-호텔을 만들어야 할 때니까.

20층 웨스틴 클럽 라운지에서 진행하는 ‘커넥트(Connect)’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한 달에 한 번,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축제 같은 거다. K-푸드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한다.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했는데 외국인들 반응이 뜨거워 우리도 놀랐다.

객실 상품도 ‘메이드 인 코리아’ 스타일로 바꿨다. 경복궁 연계 체험이나 미술관 투어 등 한국적 요소를 담은 ‘로컬 투어 패키지’를 내놨다. 이런 상품들의 구매율은 과거 10-20%에서 현재 30-40% 이상 크게 성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 체험’ 상품이 내국인뿐 아니라 해외 OTA 채널을 통해 외국인 고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로컬 경험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K-컬처 영향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트렌드라고 판단한다. 앞으로도 로컬 경험 콘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요즘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혁신 사례가 있나.


프레지덴셜 스위트 객실 / 사진=권효정 기자

20층 프리미엄 일식당 ‘스시조’ 변화가 대표 사례다. 과거 스시조는 포멀한 서비스로 유명했다. 일식 전통에 따라 좌식 룸에서 무릎을 꿇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한때는 무릎 꿇고 서빙하는 모습이 최고의 서비스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불편함이 오히려 고객 경험을 저해했다.

과감히 좌식 테이블에 작별을 고하고 테이블 좌석을 전면 도입했다. 여기에 요즘 트렌드인 ‘오마카세’를 위한 프라이빗 공간도 마련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객은 편안함에 환호했고, 직원은 무릎 관절에 작별 인사를 했다. 럭셔리한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편안함은 한층 높아졌다. 고객과 직원이 동시에 미소 짓는 찰나가 진정한 혁신의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 호텔 산업 발전에 기여한 조선호텔의 역할과 비전은 무엇인가?

한국의 위상이 K-컬처와 경제 성장으로 높아졌지만, 호텔 산업은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호텔업계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조선호텔을 비롯한 국내 유수 호텔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우수 인력을 확보했다. 당면 과제는 한국 호텔 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동시에 호텔 산업 이미지 개선도 시급하다. 젊은 층 사이에서 비선호 직종으로 인식되는 경향을 바꾸고, 미래를 선도하는 매력적인 분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목표다.

향후 10년간 호텔업계 변화를 예상하면?

호텔 산업은 기술 혁신과 여행 일상화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변화할 거다. 기술이 서비스 판도를 뒤흔들고, 여행 일상화로 호텔 수요와 기대도 다각화될 듯하다. 이런 변화는 호텔 산업의 다양화와 양극화를 동시에 불러온다. 한편으로는 기술로 무장한 가성비 높은 캐주얼 호텔이 부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미 넘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럭셔리 호텔이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호텔이 꿈꾸는 미래 모습은?

10년, 20년 후에도 조선호텔은 서울의 랜드마크로 우뚝 설 것이다. 전 세계인이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호텔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젊은 세대에겐 ‘항상 곁에 있는 호텔’로 기억되길 바란다. 할아버지 첫 데이트부터 손주 졸업 축하 파티까지, 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으로 남고 싶다. 겉으로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지만, 내면으로는 끊임없이 혁신하며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정중동(靜中動)’ 공간을 지향한다.

‘진정한 호텔리어’란 무엇이며, 어떤 호텔리어로 기억되고 싶은가.


웨스틴 조선 서울 100주년 행사 / 사진=방송 갈무리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진정한 호텔리어란 고객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고객과 자신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는 사람이 현 시대에 걸맞은 호텔리어다. 총지배인으로서 직원에 대한 관심도 놓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이 자리를 떠나더라도, 후배나 함께 일했던 이들이 ‘저 사람은 고객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았지만, 직원에게도 늘 관심을 보여줬던 사람이었지’라고 기억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

100주년 때 일화가 떠오른다. 홍보 담당으로 100주년 기념 행사를 기획했을 때다. 행사에 누구를 초청할지 고민이 많았다. 100년이란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는 자리인데. 우리와 경영진이 내린 결정은 ‘직원’이었다. 호텔을 만들고, 거쳐 갔으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야말로 행사 주인공이라고 봤다. 초대된 사람 대부분이 호텔에서 근무했던 분들, 협력업체에서 함께 도와주셨던 분들이었다. 보통 이런 행사는 정재계 VIP 모시고 방명록 쓰고 사진 찍는 게 관행 아닌가.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를 만든 사람들을 초대한 게 훨씬 의미 있었다. 그때 ‘아, 이게 바로 조선호텔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호텔 생활하면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놓치면 후회하는 110주년 기념 이벤트는?

10월 한 달간 웨스틴 조선 서울 로비가 110년 역사의 무대로 변신한다. 회고전을 넘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전시회다. 1914년 개관 당시 조선호텔은 4~5층 규모 건물이었다. 지금의 20층과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흑백사진으로만 봤던 그 시절 호텔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레고 공인 작가와 손잡았다. 10만 개 레고 브릭으로 옛 조선호텔을 재현했는데, 건물만 만든 게 아니다. 당시 호텔리어들 모습, 열렸던 행사들까지 세세하게 표현했다. 8일부터 3일간은 깜짝 선물도 준비했다. 기념품과 음료를 나누며 역사에 동참해 준 고객에게 감사를 전한다.

오랜 시간 호텔과 함께한 직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조선호텔의 역사는 곧 사람의 역사다. 국내 어느 호텔이 이런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지나간 선배, 현재의 동료, 미래의 후배들이 모두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과거의 발자취, 현재의 땀, 미래의 꿈 모두가 존중받아 마땅하다. 모두가 충분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아니, 꼭 가졌으면 한다.

후배들에게 조언하자면

상투적일 수 있는데 호텔리어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길 권한다. 호텔 산업은 노동집약적이며, 때로는 구시대적으로 보일 수 있다. 화려한 신기술과 트렌디한 직업이 눈길을 끄는 시대지만, 호텔 산업 핵심은 인적 서비스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콘텐츠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호텔리어 일은 지속 가능한 직업이며, 멀지 않은 미래에 각광받게 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여행과 레저 산업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호텔 관련 비즈니스 활성화와 부가가치도 높아졌다. 10~20년 후에는 다른 산업과 간극을 메우고 앞서 나갈 수 있다. 긴 안목으로 바라보고 준비해가길 바란다.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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