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안녕하세요’로 데뷔한 가수 장미화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했지만, 그녀의 인생은 화려한 무대 뒤에서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혼 후 아들을 낳았으나 4년 만에 이혼하게 되었고, 당시 아들은 장손이라는 이유로 시댁에서 데려가 버렸는데요.
이에 장미화는 “죽어도 아이는 못 주겠다”며 아들을 되찾기 위해 남편의 빚을 모두 갚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장미화는 빚을 갚기 위해 하루에 12군데씩 행사를 뛰어야 했고, 그 고된 시간 속에서도 아들을 위해 남편과 친구로 지내며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요.
덕분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졌고, 아버지 생일을 따로 챙겨줄 만큼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도 잠시, 남편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리며 장미화는 큰 충격을 받았는습니다.
또한, 장미화는 위로 6명의 언니들이 있었지만,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었는데요.
결국 외동딸로 남게 된 장미화는 어머니의 애정 속에서 자랐지만, 어머니마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욱이 장미화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큰 한으로 남았는데요.
당시 9·11 테러로 인해 항공편이 전면 중단되어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장미화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시련을 극복하며 오늘날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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